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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Sep 13. 2016

들을 준비 되셨습니까?

얼마 전, 한 교육기관의 입학 설명회를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유치부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 탓인지 질문과 답변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었다. 잠시 정신이 딴 나라로 흘러가려던 찰나, 입학 담당자의 답변 중 일부가 귀에 들어왔다.


“… 우리는 그 순간 아이가 이 부분을 학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아이를 관찰하고…”


이 부분이 유독 색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는, 지금까지 교육 현장이나 일상 생활 속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 보다는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의 문제는, 잘 가르치지 못하는 선생님 (말하는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 재미가 없기 때문에 혹은 학생들을 사로잡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 (듣는 사람)이 집중하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잠을 청하거나 선생님을 무시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오랫동안 접하다 보니 학생, 즉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연 해당 수업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잔소리가 듣기 싫은 이유는 나에게 필요가 없어서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나에게 계속 반복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꼭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판단한 화자(話者)에게는, 자신의 이야기가 잔소리로 전락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로 다가가게 만든 잘못은 오롯이 화자(話者)의 몫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결과가 다른 경우는 의외로 많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일 경우 더 잔소리로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oo는 엄마인 내 말을 안 들어도, 네 말은 듣잖니. 잘 좀 말해주렴.” 이런 대화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단골 문장이다. 매일 만나는 사람,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가끔은 상대방을 과소평가할 때가 종종 있다. 밖에서 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바로 내 옆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나에겐 그저 가족일 뿐이고 친구일 뿐이다. 나에겐 소위 ‘대단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는 그들의 충고가 같잖다. 그래서 잔소리같다.


가끔은 서점에 즐비한 자기계발서들을 보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책의 내용을 자신의 생활에 얼마나 적용시키며 사는지 궁금하다. SNS에서 유명한 사업가의 성공담을 캡처해 놓은 이미지들을 보며, 공감을 표시한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려는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1부터 100까지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나랑 맞지 않는다거나 내 상황과 틀리다는 식으로 그 사람이 조언하는 항목들을 일일이 비판하고 있다면, 사실,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의 책을 읽었다는 행동에만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변의 ‘잔소리’ 에 이끌려 주말마다 미사에 참석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마음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였으니, 한 시간 동안 그 공간에 있다 한 들 형식적으로 입과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하루는, 미사 시간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그즈음 한창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그 시간에 얻었다. 처음으로 미사 중 신부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던 듯했다. 마냥 착하게 살라는 종교적인 이야기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귀를 닫고 앉아만 있었지만, 같은 사례라도 내 상황에 따라 나에게 맞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 경험이었다.


우리 모두 잘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고 싶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나중에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일단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조언이 아닌 말이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변신하여 내 귀에 쏙 들어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얼마나 들을 준비를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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