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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un 14. 2017

사람 냄새 나는 식탁

유난히도 많은 관심을 모으며 오픈했던 만큼, 누구보다 먼저 방문하고 싶었던 이케아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유독 눈길을 끈 것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매장의 구성도 아니었다. 매장 중간에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도 아니었고, 구입한 가구들을 직접 조립해야 한다는 점도 아니었다. 인테리어 잡지처럼 만들어진 카탈로그였다.


당시, 이케아의 카탈로그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카탈로그 사진들에 등장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평소 생각하고 있던 가구나 조명 등의 인테리어 카탈로그에는 제품 자체만이 선명하고 자세하게 보이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트렌디한 리빙 잡지에 게재되는 멋진 인테리어 공간 사진들도 인테리어 자체에 주력할 뿐 사람이 등장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케아의 카탈로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많이. 아이들의 가구를 소개하는 페이지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거실 가구 섹션에서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었다. 부엌의 싱크대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고, 식탁에서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식의 풍성함이 분위기의 풍성함으로 이어졌다. 


어디서 읽었던가. 미국에서는 집을 팔고자 할 때, 고객이 집을 보러 오면 빵을 굽는다고 한다. 이케아가 카탈로그를 통해 구매 욕구를 높이는 방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냄새.


그런 면에서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식사 시간에 대한, 그 중에서도 가능한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저녁 식사 시간에 대한 수다스러운 사람 사는 냄새를 심어주었다.


사실, 그렇다.


1인 가족이 늘어나고 소(小) 가족이 편하다고 하지만, 가끔은 경험해보지 못한 대가족의 복잡스러움과 시끄러움을 막연히 그리워해 보기도 한다. 많은 가족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은 없다. 단지 몇 명을 위한 혹은 나 혼자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고 해도, 부엌은 지친 하루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의무감으로 조용히 배를 채우기 위한 공간이 되는 경우도 많다. 매일매일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즐거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날도 많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차려놓은 식탁에서는 보통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지만 TV를 보면서 하는 식사가 가장 슬프게 느껴진다. 함께 있지만 대화의 주제나 주체를 TV에게 빼앗겨 버린 경우다. 대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적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식사 시간도 안쓰럽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명절의 식사 시간도, 돌이켜 보면 화기애애하지만은 않다.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탓에 엄마와 아이들은 별도의 상을 펴놓고 먹었던 식사 시간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의 끈끈한 정을 느끼기보다는 식사 준비를 위한 엄마의 고단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빨리 밥을 ‘해치우고’ 놀기 위한 궁리만 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케아의 식탁은 그리고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저녁 식사는 빨리 먹고 일어나는, 단순히 끼니를 채우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저렇게 수다를 떨다가는 소화가 다 되어서 금세 배고파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간다. 역시나 분위기의 풍성함이 느껴진다. 풍성할 수밖에 없다. 구성 요소가 너무 많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가 있어야 한다. 나만의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엉터리 같은 질문에도 센스 있는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웃어줄 수 있는 여유도 기본 탑재 요소다. 함께 있는 분위기가 즐거워야 한다. 어울려 있기에 즐거운 사람 냄새, 상대방을 위해 귀를 열어줄 수 있는 포용의 사람 냄새가 난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가능하게 해 주는 ‘식사’가 필요하다. 차 한 잔이나 몇 가지의 디저트 만으로는 이러한 대장정의 대화가 펼쳐지기는 어려울 듯싶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끼어들 수 있는, 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는 ‘식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배가 채워지는 만큼 마음도 넓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한 끼 식사의 매력이다. 


이 요소들을 다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TV 속 혹은 카탈로그 속 식사 시간이 부러운 것은 아닐는지.


이케아 카탈로그의 마력에 이끌려 긴 식탁을 들여놓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얼른 열린 지갑을 닫는다. 답은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 사는 냄새나는 식탁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사람 냄새가 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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