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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Sep 05. 2017

오늘도 나를 설레게 하는, 내 사람

너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은 엄마의 편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하느라 바빠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해도, 우리가 애초에 여행을 떠난 것에 불만이 있어 보기도 싫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지난 6월에 우리 곁을 떠났거나 12년 반 전에 죽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들이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냥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우리가 작은 아이였을 때 누군가 가끔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대 여기까지 올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몸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_히드로 다이어리]


공항은 늘 사람을 들뜨게 하는 장소다. 한 때 엄마는 여행 계획도 없으면서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곤 했다. 익숙하지 않은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흥분을 간직한 장소이자 반가운 사람들을 기다리는 장소, 다시 익숙한 집으로 향하는 안도감과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아쉬움을 느끼는 장소. 이 감정들 모두 ‘설렘’이라는 느낌을 간직한 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설렘 뒤에는 나의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에세이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이 상황을 담담하게 잘 표현해 주었더구나. 기대하지 않는 척했고, 기대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느낌을 누군가와 나누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말이다.


그 ‘누군가’는 사실 아무나 될 수 없다. 장황한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 많은 공통분모를 나눈 사이, 서로 티격태격 다투며 상처도 주고받았지만 덕분에 오히려 단단해진 사이, 그래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해도 반가운 그런 사이여야 가능할 것이다. 


벅찬 감정을 느낄 때도 그렇지만, 힘들 때 가장 찾고 싶은 사람 역시 바로 이런 ‘누군가’다. 


이런 ‘누군가’가 항상 내 옆에 있지는 않다. 하루 중, 네 옆에 많은 시간 함께 있게 될 사람은 아마도 의무감에 함께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 학교 생활이, 직장 생활이, 혹은 책임감에 맺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오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니 말이다. 너의 '누군가'는 너의 삶에서 휴식이 필요할 때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싶을 때, 그럴 때 잠깐 보게 될 확률이 높겠지.


그런데 그 '누군가'는 앞서 얘기했듯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오랜 시간 화석처럼 추억을 쌓아 올린 사이이기에 자신 있는 사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만만하다. 그래서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상처 받을 감수를 하고 대하기도 한다.


오늘 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밉다는 말을 제일 먼저 했지. 엄마는 침대에서 걸어 나오는 너를 보자마자 힘껏 안아주고 싶었는데, 잠든 사이에 네가 아끼는 장난감을 치워 버렸다며 눈물을 보이며 투정을 부렸지. 뒹굴다가 다칠까 봐 혹여 장난감 소리에 깰까 봐 조심조심했던 엄마의 마음은 모른 채 말이다. 지금은 귀엽게 보일 뿐이지만, 앞으로 커 가면서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도 너는 엄마에게 이렇게 행동할 것이란 걸 안다. 뭐, 엄마도 그랬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당연히 세대차이도 있을 테고, 엄마의 말은 모두 잔소리로 여겨질 테니 말이다. 그때는 엄마도 상처받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두렵지는 않다. 너의 그 ‘누군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너의 ‘누군가’에 엄마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너의 삶을 설레게 하는 너의 사람을 만들어갈 것이고, 너도 기꺼이 다른 사람의 ‘누군가’가 되고자 할 테지.


지금 싸웠다고 해서 영영 안 볼 사이가 되리라는 법도 없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그 ‘누군가’가 될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누가 내 사람이 되는지는 시간이 오래도록 지나야만 알 수 있더라. 그러기에 만남의 순간 모두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스스로가 '누군가'가 되었음이 기쁜 하루, '누군가'가 늘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나를 쳐다봐주고 내 곁에 있어주어 설렘이 가득한 그런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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