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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Feb 25. 2019

혼자서 알아서 스스로 잘하는 사람

사람은 마음 한구석에 ‘자기 혼자서 하면 안 된다’ ‘타인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생각이 배어 있습니다. 이는 학교 교육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 하고 남에게 미루지 말자고 배웠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들을 배우기만 했지 선생님께 무엇을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을 하는 것은 선생님께 반기를 드는 것과 같다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실 모르는 점이 있으면 당당하게 “미안하지만, 이 부분을 모르겠으니 알려 줄래?” 하고 바로 물어보고 지식을 하나 더 늘리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 쓰루다 도요카즈 [어중간한 나와 이별하는 48가지 방법]


언제부터인가, 질문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대화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것은, 찾아보면 연습할 수 있는 모임이 이미 여럿 있다. 주제에 따라 시간에 맞춰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미리 구상하고, 연습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모임 말이다. 이렇게 연습을 반복하면, 자신이 목표한 수준까지는 말하기 실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어떤가. 듣기는 나의 의지와 관심에 달린 것 같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필요한 말하기와 듣기는 이렇게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 질문하기는 지금도 어렵단 말이다. 


질문은, 우선 미리 준비하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면서, 상대방에게 던질 질문을 연습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게다가 나 혼자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나만 모른다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래서 비웃음 받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움, 스스로 알아볼 시도도 해보지 않고 ‘편하게’ 물어봐서 해결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반성까지. 질문하기 전에 챙겨야 할 마음의 체크리스트가 하도 많아, 궁금함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만다.


질문하지 못하고 끙끙대던 엄마는 모르는 것이 많은 상태로 문제집을 풀었고, 책장을 넘겼고,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어가며 순간을 모면했다. 그리고 ‘혼자서 알아서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자랑스럽게 쳐다보며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는 말을 할 때면, 엄마는 그래서 바로 맞장구를 쳐주지 못한다. 정말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되었는지,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모르니 말이다. 


너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책 한 장을 넘기기가 정말 쉽지 않다. “엄마, 얘는 왜 그런 거야?”라고 물어보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그 다음 줄을 엄마가 읽어줘서 알게 될 텐데 못 참고 물어보는 너에게 좀 화가 난다. “00는 무슨 뜻이야?” XX라는 뜻이야. “XX가 뭔데?”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너에게 좀 짜증이 난다. “하하하하, 얘는 옷이 왜 이렇게 된 거야~~” 라며 그림을 평가하느라 멈춰있는 페이지를 쳐다보노라면, 너에게 막 폭발할 것 같다. 5권 읽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이런 속도라면 3권을 읽어도 40분은 훌쩍 넘길 것 같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속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참는 이유는 네가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알아서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다.


네가 이렇게 당당하게, 귀찮을 정도로 많이 물어보는 이유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니까 그리고 질문을 하면서 걱정도, 두려움도, 무서움도 자기반성도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왜 질문을 하면서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나를 돌아봐야 할까. 그것들을 자존심과 연관시키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자존심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고 하더구나. 그런데 이 자존심은 비교를 통해 가치가 매겨지다 보니, 그 기준이 상대적인 것으로 되어 버려서 자꾸 남을 의식하게 되더라. 남에게 멋있어 보이고 자존심을 지키고자 내가 점점 더 힘들어져 가는 이 상황은, 정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일까.


자존심이 상하는지 아닌지는 너의 마음에 달렸다. 자존심 상하는 창피함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만 크게 차지할 뿐이다. 질문을 한다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아니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고, 모르겠으면 알려 달라고 그렇게 물어볼 수 있는 용기를 지녔으면 좋겠다.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알아서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너를 위한 일이 아니니까. 그건 칭찬도 아니고, 외로운 사람일 뿐이니까.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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