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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Sep 26. 2017

보석을 꺼낼 수 있는 용기

너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은 엄마의 편지

우리 이야기에 빨갛게 상기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놀랐다. 정말로 자기가 가진 보석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십 대의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표정. 작은 칭찬에도 화들짝 놀라고, 세상 그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장 모자란 표정. 내게 그런 재능이 있을 리가 없다는 표정. 보석을 가득 안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표정. 그런 표정을 그녀가 짓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칭찬을 들어보는 아이처럼. 그녀는 이미 충분했는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칭찬이 의도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문에 오해를 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미워지기도 한다. 상대편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그 마음속을 꿰뚫어 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헌데 유독 학창 시절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대가 얘기하는 말의 뒷모습은 내가 듣는 것과는 반대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칭찬도 비꼬는 말투로 들리고, 조언도 잔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반대로만 하고 싶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예쁘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울긋불긋 여드름이 한창이던 얼굴을 감추고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화장품을 마구마구 툭툭 찍어 바르는 것인데도,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것이 피부에 좋다는 조언은 짜증만 더했다. 게다가 지금이 예쁘다니. 당시에는 그저, 공부만 시키려는 거짓말로 들릴 뿐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잔소리만 해대는 어른들이 그렇게 싫었는데, 결국 엄마도 그런 어른의 역할을 하려는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화장기 하나 없이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지금은 너무 상큼하고 예쁠 수 없다. 당시 내가 숨기고 싶었고 자신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그 시기를 지나온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역시나 어른들이 얘기하는 조언이나 칭찬에 짜증이 날 것은 마찬가지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옆에서 지겨울 정도로 끊임없이 용기를 주었다면, 언젠가는 그 말이 들렸을 테고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멘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네가 갖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들춰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한다.


대부분 십 대, 이십 대를 정의하며 무엇이든 꿈꾸며 다 할 수 있는 패기 넘치는 시기라고들 하지만, 사실 그 시절의 중간에 있던 입장에서는 투지 넘치고 용기 있는 마음보다는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제일 빛나는 시기라는 것도 결국은 그 기간 밖에 있는 사람들의 평가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뭘 알아야 전속력을 다해 달려가며 꿈을 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스스로를 탐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입장에서 미안하다. 그런데, 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맞다. 너는 탄생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기쁘게 했으며, 많은 축복을 받았기에 마땅히 그러하다. 그 가능성, 찾아야 한다. 


내 안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운이 좋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들 그것이 가다듬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일을 처리하기에도 급하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도 중요하고, 성적도 중요하고, 스펙을 쌓아가는 일도 중요하기에, 실체가 없어 잘 모르겠고 확신이 없는 일에 시간을 내어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알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을 실행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과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와 닿지 않고 짜증만 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옆에서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려주고 싶고, 끊임없이 말해주고 싶다. 


네 안에 있는 보석을 꺼낼 수 있는 용기를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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