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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Nov 06. 2017

멋지다, 우아하다 그리고 예쁘다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출렁거리는 뱃살은 거추장스럽고,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된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처지고 있다.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한숨을 쉬다가 정성스럽게 털을 고르는 호순이를 보면 신기하다. 앞발에 혀로 침을 싹싹 묻혀서 얼굴을 닦는다. 허리를 구부리고 포동포동한 뱃살을 핥는다. 줄무늬 꼬리도 빼놓지 않고 그루밍한다. 다른 고양이들도 모두 이렇게 몸단장을 하지만 호순이는 유독 더 긴 시간 정 성스럽게 털을 고른다.

- 진고로호 [퇴근 후 고양이랑 한잔]


매니큐어 몇 개를 샀다. 집에 있던 오래된 매니큐어는 싹 다 정리하고, 큰 맘먹고 마련한 것이었다. 


뭔가 꾸미고 싶었다. 작게나마 꾸미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가 생각의 중심이었지만, 점점 ‘나를 사랑하는 표현 방법’, ‘자존감’ 등의 거창한 단어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꾸미기에 대한 합리화는 더욱 단단해졌다. 나도 나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내고 싶었다. 이 작은 매니큐어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곳이지만, 나는 줄곧 내 손이 좋았다. 손바닥에 비해 유달리 손가락이 길었고, 반지나 팔찌 등의 액세서리 하나 없어도 자신 있다고 자부해왔기 때문이다.


손톱에 그레이 색상을 칠하고, 책 한 권 들고 집을 나선 늦은 오전이었다. 따뜻한 햇살과 달콤한 차 한 잔이라면, 점심 따위는 잊어도 될 듯한 날이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였고, 컵과 책 그리고 햇살은 인증샷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았다. 멈춰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시간이었다. 그냥 그 순간을 오래도록 붙잡아 놓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때마침 커다란 통유리만큼이나 큰 햇살이 거대하게 그리고 눈부시게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 있게 내놓고 싶던 내 손을 너무나도 환하게 덮어버렸다.


창피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커다란 조명판이 적나라하게 비춰댄 내 손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내 손이랑 많이 달랐다. 가늘었던 손가락은 살을 더 찌워야 할 듯 앙상해 보였다. 주름도 많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레이 색상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싶었지만, 곧 그 어떤 색깔도 지금의 내 손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확신이 들었다.


슬며시 왼손은 책 표지 뒤쪽으로, 오른손은 괜히 컵을 감싸 안으며 손을 덮고 있던 주름을 펴 보이려 했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美를 평가할 때 주로 쓰는 ‘멋지다’, ‘우아하다’라는 단어와 ‘예쁘다’, ‘잘 생겼다’라는 단어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멋지다’라는 표현은, 어떤 행동의 긍정적인 결과가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아우라에 더해진 느낌이다. 근사한 옷을 입지 않아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소위 ‘포스’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 그대로 묻어난다. 외모 그 자체만으로 ‘멋지다’라는 표현을 하기에는, 그 느낌의 유효기간이 짧다. ‘우아하다’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고상하다, 기품이 있다 등의 의미인 만큼 그 사람의 말투, 행동, 성격이 바탕에 깔려있는 외모의 표현이다. 이 역시 그 사람이 움직이면서 내보이는 ‘분위기’가 없이는 쓸 수 없는 표현이다. 


반대로, ‘예쁘다’ 혹은‘잘 생겼다’라는 표현은 외모 그 자체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외모 자체로 평가받는 시기 또한 제한적이다. 엄마처럼 젊음 이후의 삶을 사는 연령대에게 ‘예쁘다’라는 평가를 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젊음의 시절에는, 그 젊음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美를 한껏 발전시키고 그 칭찬을 즐기는 것 또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예쁠 수 있는 부분을 더 다듬고, 자신 있는 부분을 더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시기이고, 그래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나를 쳐다보는 것이 필수다. 나는 어디가 예쁜지, 어느 부분이 잘 생겼는지 알아야 화장을 할 때도, 옷을 입을 때도, 머리 스타일을 바꿀 때도 내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무조건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나의 아름다움과 똑같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엄마는 이제 예쁘다는 표현을 추구하는 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쁘다를 추구하다가, 부끄럽게도 이렇게 햇살 속에서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가 엄마를 많은 시간 쳐다보고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색깔을 덧입히기보다는 핸드크림을 열심히 바르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을 텐데 말이다.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기를 만난다면, 외모 그대로에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게 된다면, 너의 행동에서 나타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품기 위해 행동에 품격을 더하기를 바란다.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너를 가다듬으며,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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