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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20. 2017

내 시간을 찾다

쌓여있는 시간만큼 무겁고 또 커다란 것이 있을까. 시간을 꼬박꼬박 모아 둔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하루가 지나고, 그 하루가 쌓이면 시간은 어제보다 더 두꺼워져 있다.

- 박솔미 [오후를 찾아요]


너를 만나게 될 예정일을 한 달여 앞둔, 휴직계를 내고 아침부터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던 첫날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지하철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모두가 부산스럽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지켜보았던 지난 10년이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집에 앉아있다는 것이, 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했다. 집은 고요했지만, 마음은 쿵쿵 뛰는 초조함에 시끄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니,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실체 없는 불안한 느낌에 말 그대로 미칠 것만 같은 아침이었다.


그렇게 오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점심시간이 왔다. 오전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점심을 대충 때우고는 책을 집어 들었지만, 독서의 시간 역시 안절부절. 틈틈이 읽는 책이 얼마나 달콤한지 새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아직 공부해야 할 부분이 산더미 같지만, 잠깐 머리를 식힌다며 몰래 소설책 책장을 넘기던 시험 기간. 지하철에서 종이의 촉감을 느끼던 출퇴근 시간. 그 시간의 독서는 정말 짜릿했다. 아쉬워야 더 끌리는 것은 독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쨌든, 이렇게 갑자기 주어진 시간은 아쉽기는커녕 넘쳐났기에, 매력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어색한 자유의 시간이 그렇게 어영부영 흘러가고 있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소파에 누웠는데,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그렇게 예쁘더라. 눈이 부셨다. 거실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넓은 책장에, 햇빛이 점점 넓게 펼쳐졌다. 그럴수록 책들도 반짝였다. 


이 집에 살면서, 이렇게 우리 집이 멋진 줄 몰랐다. 뭐, 당연했다. 이 시간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집의 모든 물건들은 매일같이 이렇게 호사스러운 자연의 선물을 감상하고 있었을 테지. 그런데 엄마는 강제로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된 이후에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억지로 생긴 여유의 시간이 감사했다. 게으른 시간이라고 오해했던 이 시간은 사실, 오로지 나만 생각할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었다. 바쁘게 사는 것이야 말로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것 마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 마냥 지내왔던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감사의 시간을 놓쳤을까.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급한 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런데 눈 앞에 닥치는 일들은 계속 줄을 서서 대기 중이다. 쉴 틈을 주지 않지. 줄 서있는 일들이 얌전히 서 있기만 해도 그나마 나을 텐데, 자꾸 뒤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누가 먼저 빨리 많은 것을 해치우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번에 많은 것을 처리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래서인가 보다. 멀리 보는 방법을 자꾸 잊는다.


조급해하지 않고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그 시간 안에 잠시 쉬어가는 ‘내 시간’도 넣을 수 있을 텐데. 그 감사한 시간이 자꾸 후순위로 밀린다. 아니, 어쩌면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 


바로 앞만 보는 습관은 진짜 시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로, 주변을 둘러보면 멀리 볼 수 있는 풍경이 부족하기도 하다. 가끔 공원을 방문하면 느낀다. 이렇게 탁 트인 공터, 저 멀리의 나무들, 장애물이라는 제약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특별해진 이유는, 빽빽하게 들어선 사물들의 틈을 찾아 비집고 나가야만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멀리 볼 수 있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된 것 같다.


하루하루 내 시간을 두텁게 다져간다고 생각하지만, 감사의 시간인 내 시간이 없으면 네가 쌓아온 다양한 경험들이 화석처럼 차곡차곡 쌓여가기는커녕 어지럽게 엉켜갈 것 같다.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이 더욱 의미 있게 정리되도록, 그리고 너에게 이미 주어져있는 감사한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너의 시간을 갖는 데 의도적으로 노력해보면 어떨까.


너만의 생각을 하고, 너만의 것을 찾고, 너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내 시간'으로, 너의 바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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