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조흐 Sep 24. 2020

퇴사의 무게란

퇴사를 하면 '회사'라는 그늘이 사라진다. 회사를 다닐 때의 명함의 무게와 퇴사를 한 뒤의 명함의 무게는 다르다. 온전히 자신의 이름 석자와 개인의 역량으로 사업 아이템과 파트너를 발굴해야 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고, 판단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일명 "맨땅에 헤딩"이라고 부르는 문장과 같이, 정글에 홀로 버려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퇴사 후 초기에는 내 기업의 가치는 '0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그늘이 사라진 뒤에는 모든 것을 새롭게 쌓아가야 한다. 자신의 가치부터 시작해서 결과물, 커리어, 거래처와 관련된 것들. 회사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이다.

막상 퇴사하면 회사를 다닐 때 멋모르고 누렸던 장점들이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일단 회사원은 법적인 문제와 세금 등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노트북도 주고, 프린터도 있고, 사무 공간도 제공한다. 심지어 육아도 회사에서 지원해준다. 퇴사하고 내 일을 시작하면 세금을 어떻게 내는지부터 막막하다. 회사에서 마음대로 쓰던 A4 용지나 화장지, 볼펜도 내 돈으로 직접 사서 써야 한다. 회사에 다니면 선배나 동료들로부터 노하우나 전문 지식을 배우고 소속감도 얻을 수 있다. 단순히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 외에 회사가 제공하는 무형의 가치들이 적지 않다. 퇴사하면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킵고잉, p064>

모든 것을 혼자서

그렇다고 시간의 자유가 허락되는 거도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해야 하니 몸이 10개라도 모자란다. 회사에서는 분업을 통해 각자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었다면, 이제는 그토록 하기 싫었던 전화받기나 택배 배송까지 직접 처리해야 한다. 시간 맞춰 사무실에 출근하지는 않지만 근무 시간이 따로 없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일하는 시간이다. 밥을 먹을 때도, 휴식을 취할 때도, 주말에도 사업과 관련된 생각과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다. 온 하루가 일 머리로 가득한 그런 세상이 퇴사 후의 세상인 것이다.


그저 푹 쉬는 것도 좋지만

퇴사 후에는 퇴직금을 받고 미리 벌어둔 돈으로 당분간 쉬고 놀자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정이 있고,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휴식보다는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한 새로운 행동이 더 중요하다. 과거에 퇴사를 한 뒤 2년 동안 안식년을 가진 시절이 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푹 쉬고 놀기만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어야 한다.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돈벌이에 대해 구상을 하고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 것이다. 


철저한 준비와 최소한의 기반

비록 후회하지는 않지만 조금만 더 빠르게 일의 세계로 복귀했으면 어땠을까도 싶다. 그러면 원하는 결과를 더 빠르게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 일.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지금은 앞으로의 순간들에 더 집중해야 할 때다. 당장의 퇴사도 좋지만 월급의 부재를, 세금의 압박을, 직함의 소멸을, 내 가치의 0 원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철저한 준비와 최소한의 기반이 확보된 상태에서 회사를 나온다면 보다 더 혼란스럽지 않고 평화로운 퇴사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