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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Nov 20. 2020

바나나 1개를 1억에 팔 수 있었던 비밀

언젠가 흥미로운 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습니다. 해당 영상에서는 테이프로 벽에 붙여진 바나나를 1억 4천만 원에 판매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서 벽에 전시된 바나나를 먹어버립니다. 그 바나나는 그냥 바나나가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의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설치작품이었죠. 이 바나나를 먹어치운 사람은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였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죠. 바나나를 먹은 예술가의 말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아~ 배고파"라고 바나나를 먹은 뒤 맛있었다는 얘기를 전한 것이죠. 이에 갤러리 측은 "바나나는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 그가 작품을 훼손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또 다른 바나나를 가져와서 다시 예술 작품이라고 벽에 설치해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코미디언'으로 1억 4천만 원에 무려 3개나 팔렸습니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처럼 예술적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 매개체 또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개념미술'이라고 부릅니다. 개념 미술은 미니멀 아트 이후에 대두한 현대미술의 경향으로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적 제작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개념 미술의 선구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시초가 된 작품은 무엇일까요?


1917년 마르셀 뒤샹은 뉴욕시에 있는 배관 용품점에 들어가 욕실용품 판매대에 놓인 베드퍼드셔풍 소변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반들반들한 사기 소변기를 사서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소변기 뒤쪽에 'R. 머트'라고 서명한 후 '분수'라는 제목을 붙여 예술 작품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있어야 할 장소에서 벗어나 삐딱하게 전시된 그 소변기는 야릇하게 아름다웠지만, 심미적인 측면이 초점이 아니었습니다. 뒤샹은 서명한 소변기를 자신이 설립한 독립예술가협회의 전시에 출품했습니다. 이 협회는 진보적인 사고를 표방하는 조직으로서 격조 있는 척하는 고리타분한 미술관의 엄격함을 타파하는 게 설립 목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뒤샹의 작품 '분수'는 과연 전시에 소변기를 출품할 수 있었을까요?


작품명 '분수'는 생각이 열려 있는 협회 큐레이터들도 감당하기 버거웠습니다. 뒤샹은 용도가 있는, 이미 만들어진 사물을 미술 전시회에 익명으로 출품했습니다.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이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정말 무례하게도 소변기를 출품한 거죠. 협회는 주저했고,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분수'는 시시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소변기 사진 한 장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 소변기는 20세기 초 쓰레기장에 던져져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산더미 같은 쓰레기에 파묻혀버렸을지 모릅니다.

소변기는 욕실용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예술가의 서명과 타이틀을 담고 찬사를 받는 걸작들과 함께 나란히 화랑에 전시될 경우 갑자기 엄청난 의미가 부여된다. 가치를 평가할 때는 맥락이 중요하다. <성공의 공식 포뮬러, p090>

그러나 뒤샹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 소변기는 고상한 미술계의 면전에 들이대고 도발하는 행위였고, 이런 행위는 예술계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미술사 학자들이 <분수>를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습니다.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1997년 그리스 출신 수집가인 디미트리 다스칼로풀로스가 이 작품에 무려 200만 달러를 지불할 정도였어요. 폐기 처분된 원작도 아니고, 50년 후에 뒤샹의 딜러가 선보인 17개 복제품 가운데 하나를 사는 데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한 것이죠. 다스칼로풀로스는 "내 생각에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기원을 보여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카텔란의 '코미디언'과 뒤샹의 '분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사실 바나나와 소변기는 그저 평범한 과일인 바나나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소변기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하지만 사물이 예술 작품이 되는 이유는 손으로 만들어서도, 심미적으로 보기 좋아서도 아니고 그 사물이 하나의 개념을 표방하기 때문입니다. 감히 이런 진부한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쓰레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다', '제 눈에 안경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뒤샹은 바로 이런 개념을 행동으로 보여준 최초의 예술가입니다.


그는 또 다른 문제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장엄한 미술관과 화랑들이 있지만 미술 세계는 작고 편협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그들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말이죠. 소변기는 욕실용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예술가의 서명과 타이틀을 달고 찬사를 받는 걸작들과 함께 나란히 화랑에 전시될 경우 갑자기 엄청난 의미가 부여됩니다. 가치를 평가할 때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뒤샹의 <분수>는 품질과 성과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분야에서 성공을 가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기업의 분기별 보고서 같은 척도가 있으면 성공의 원동력은 성과입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의 경우 어느 작품이 더 나은지를 판단하기란 매우 까다롭습니다. 예술에 내재된 가치가 없다면 200만 달러라는 가격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은 '연결망'입니다. 성과는 성공의 원동력이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없을 때는 연결망이 성공의 원동력입니다. 카텔란의 바나나가 1억 4천만 원에 판매된 이유도, 뒤샹의 소변기가 200만 달러에 판매된 이유도 모두 '연결망' 덕분이죠.


이탈리아 출신의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를 1억 4천만 원에 판매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와 인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미술가의 명성이 더해진 것이겠죠. 뒤샹의 소변기는 현대미술의 기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가 독립예술가 협회를 설립한 사람임과 동시에 전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 역시 <분수>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죠. 성공에 있어 연결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되새겨 본다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을까요? 성과를 측정할 수 없을 때는 연결망이 곧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둡시다.


참고 도서: 성공의 공식 포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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