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높은 2cm
2cm에 담긴 의미.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cm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아니, '2cm'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도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아주 작은 길이 또는 높이라고 생각되는 2cm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 며칠간 여러 봉사활동을 했는데 어제는 <장애인문화예술축제 A+ festival>에서 행사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장애인문화예술축제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고 한다. A+ 페스티벌은 장애인들의 잠재적 가능성(Ability), 열린 접근성(Accessibility), 활기찬 역동성(Activity)을 구호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예술(Arts)로 함께(All Together)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에도 장애인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여러 번 했었는데 이번 활동은 내 기억 속에 더 인상 깊게 자리 잡았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부스는 2cm와 관련된 부스였다. 2cm는 배리어 프리 서포터즈를 진행하는 단체의 이름이다. 배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또는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을 말한다. 2cm의 경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 대한 배리어 프리를 진행하는 단체였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팔찌를 하나 선물 받았는데 2cm에 대한 팔찌였다. 팔찌에는 2cm로 된 줄자 모형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처음에는 되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하지만 팔찌를 선물을 해주신 서포터즈분이 2cm에 담긴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신 뒤로 내 생각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여러 설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2cm 높이의 장애물이 있으면 그곳을 지나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2cm'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벽 2cm'가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순간부터 <2cm>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빨간약을 먹은 뒤 현실을 자각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나니 부스 안 한편에 놓여있는 휠체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휠체어의 바퀴가 아무리 클지라도 2cm 높이의 방지턱, 장애물이 있다면 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넘어가더라도 그 과정이 몹시 위험해 보였다. 앉은 상태로 2cm 이상의 방지턱을 지나간다면 흔들림도 상당히 클 것이고. 어떤 방문객 분은 서울의 몇몇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며, 휠체어 리프트가 있어도 아예 작동이 되지 않는 장소도 꽤나 있다고 하셨다. 요즘따라 느끼는 거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불편함을 제대로 인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지하철 휠체어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면 엘리베이터를 찾기도 막막하고,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까 봐 피하게 되는 등 답답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완화하기 위하여 최근에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두가 쉽게 이용하는 지도인 배리어프리맵(배프맵)이 만들어지고 있다.
배리어프리맵에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의 유무, 휠체어 리프트의 유무, 개찰구와 횡단보도, 엘리베이터의 거리 등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를 위해 환승 지도를 제공해주는 muui부터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센터 사회봉사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장소들을 직접 리서치하고 그린 배리어프리 지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은 배리어 프리 활동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2cm에 담긴 의미.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부분, 작은 의미 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달린 정말 큰 의미 일 수 있다. 이것은 2cm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해당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각자가 가진 가치관과 중요한 우선순위가 모두 다르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이해가 안되네 정말"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이전에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보고 서로를 인정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생각이 다르듯이 각자가 가진 외부환경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인정해주면 될 뿐이다. 2cm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을 선사해준 2cm에 감사의 마음을 보내본다.
<2cm>하면 떠오르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세계적인 라이프 코치 마이크 베이어는 말한다. "변화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어쩌면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올지라도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한다면 공존하며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50년 전 파독 간호사에서 거장 화가가 된 우주의 정원사 노은님은 말한다. "어떤 일이 있든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돼요.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웃음). 날씨처럼요.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 어떤 일이든 그냥 받아들이는 것. 마치 날씨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서로를 인정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재미있는 영화를 하나 발견했다.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조제와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와의 사랑 이야기. 시간이 날 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