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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Oct 28. 2019

등산길에서 만난 마약과도 같은 기분 '러너스 하이'

무엇보다 그 순간이 재밌었다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러너스 하이>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러너스 하이는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중간 정도의 강도로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의 과정에서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러너스 하이는 운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감으로도 불리며, 러너스 하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느낌과 같다", "꽃밭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보통은 1분에 120회 이상의 심장박동수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주로 달리기를 통해 이러한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러너스 하이'라고 불린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러너스 하이>가 주는 이로움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다. 러너스 하이가 왔을 때의 의식 상태는 헤로인이나 모르핀 혹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 유사하다. 때로는 오르가슴과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니 중독성이 강하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주로 달리기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하는 러너스 하이이지만 수영, 야구, 럭비, 축구, 스키 등의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에서도 얼마든지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러너스 하이에 대해서 알기 전이기는 하지만 나도 분명 '러너스 하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특이하게도 달리기나 수영, 축구, 야구 등의 운동이 아닌 '등산'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했다. 한 달 전의 나는 한라산 등반에 성공하기 위해서 미리 서울에 있는 산을 등산하면서 예행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러던 차에 지인 중 한 명이 도봉산에 갈 예정이라고 해서 합류하기로 했다. 등산을 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왔다. 몇 년 전 한라산 등반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하산 후에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고, 등산을 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예행연습을 통해 등산 체력을 길러서 더 수월하게 한라산을 오르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이 재밌었다

도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그렇게 도봉산을 오르게 되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7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봉산역에 도착한 뒤 등산을 시작했다. 점심 후에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만 올라간 뒤 내려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정상 도착까지 주어진 시간은 3시간. 도봉산 입구로 이동하면서도 과연 3시간 안에 도봉산을 완등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물품보관소가 보이지 않아서 노트북과 여러 짐이 든 가방을 짊어진 채 출발했기에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출발해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해보기로 했다.


초반 코스에서는 기분이 아주 좋았고 몸도 가벼웠다. 산에 오니 공기가 참 맑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정도면 정상까지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1시간 정도 산을 오르니 숨이 턱 막히고 다리는 저려왔다. 오전 8시 18분. 산을 오른 지 1시간 18분 정도가 되어서야 산의 중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는 저리고 분명 내 몸에 붙은 다리였지만 내 다리 같지가 않은 느낌이었다. 중간에 물도 마시면서 조금씩 휴식을 취했다. 호흡은 점점 가빠졌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왠지 모르겠지만 웃음이 나왔다. 등산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졌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러나 '러너스 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때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나는 몸이 아주 힘듦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아주 또렷했고 감정 상태는 아주 최상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겨났다. 힘은 들고 다리는 덜덜 떨렸지만 "정상 정도야 조금 더 힘을 내면 무리 없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이 재밌었다. 총 3명의 동료가 함께 갔는데 서로를 응원해주면서 한 걸음 한 걸음발을 내디뎠다. 



'러너스 하이'가 주는 이로움

분명 산의 중턱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매우 힘든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 단계를 넘어가니 그런 힘든 순간까지도 즐기게 되었다. 이것이 러너스 하이가 주는 이로움일까?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그때의 그 순간을 생각하면 한 번 더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고 싶어 진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달리기를 좋아하고, 좋아하다 못해 중독이 되는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매일 달리고 싶을 것이다.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상쾌한 기분이 찾아올 것이니!


얼마 전에 친구와 운동을 하면서 또 한 번의 러너스 하이를 경험했다. 평생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토록 게으른 사람이 운동이라니! 사실 벨라 마키의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라는 책을 보기 전까지는 '러너스 하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책의 저자는 심각한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의 여러 정신적 질환을 앓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운동과는 평생 담을 쌓고 살아가던 사람이다.


벨라 마키는 전남편과의 이혼 후 여러 정신적 질환들이 더 심해져서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그러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불안장애, 우울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계속해서 달리게 된다. 그러나 평생 달리기는커녕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그녀였기에 오래 달릴 수는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달리기 최고 기록은 3분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달리기를 시작한 당일의 기록이 그녀 인생 최고 기록이었다.


나는 오늘 3분을 달렸다. 어둠 속에서 가다 서다 하며 천천히. 이래 봬도 내 인생 최고 기록을 3분이나 늘린 것이다. 숨이 차고 옆구리가 뻐근하지만 기분은 요 몇 년 사이 최고다. 첫 시도치 고는 괜찮았다. 이제 집에 가서 좀 울어야겠다. 아니면 와인이나 마시든가.



시작하기엔 지금이 가장 좋을 때!

무엇인가 정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의 일이다. 내가 '러너스 하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과거의 경험에서 그러한 일이 왜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등산하고, 더 많이 달리고 싶다. 사실 나는 '달리기'라는 것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 야외라는 공간에서 달리는 내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상상만 해도. 그래도 몇 달 전부터는 조금씩 산책도 하고 바깥 구경을 하면서 좋은 공기도 마셔보고 있다. 그러다가 걷는 것이 익숙해지니 조금씩 달려보기도 했고. 


그랬지만 그것이 며칠 가지는 못했다. 이번에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라는 책을 읽으니 다시 한번 산책을 하고 달리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생겼다. 그 과정 속에서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도 있을 테니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주신 벨라 마키 작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이 앞으로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내 인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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