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의 궤도는 땅위에 존재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필모그라피의 거의 2/3는 공포나 판타지로 채워져 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해 가는데 결국 인간을 찾아오는 유령의 존재는 살아있는 인간사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도쿄 소나타>(2009)의 흥미로운 지점은 공포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고 유령의 이야기와도 거리가 먼,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을 극단의 사실주의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성장을 멈춘 장기간의 불황은 일본 사회에 대량의 실직사태를 불러오고 아무 준비 없는 사람들을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서 밀어버린다. 사사키의 가족은 아버지 류헤이의 실직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각자의 생활이 흔들린다.
영화의 도입부터 실직한 류헤이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는 많은 실직자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하염없이 이어간다. 그 결론이 절망으로 끝나버린 친구도 만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에게 실직을 들켜버린다. 사회에 관심을 가진 타카시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결정을 내리고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지만, 권위적인 류헤이의 허락은 얻어내지 못한다. 그래도 자신의 결정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아무도 자신에게 의논하지 않고 그저 가족을 유지하는 없는 사람 같은 엄마 메구미는 큰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의 실직을 눈으로 확인하며 역시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막내 켄지의 생활을 살핀다. 그녀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우연히 피아노 소리에 반한 막내 켄지는 급식비를 유용해 피아노를 배운다. 이 일탈이 그의 인생에 큰 변화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그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흐르고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이 가족의 불안한 생활은 이어진다. 삶은 이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부풀고 있는데, 그들의 생활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이 각각의 사건으로 인해 이들은 폭풍 같은 불안한 밤을 보낸다. 켄지의 하룻밤은 우리가 별 거부감 없이 일상이라고 여기는 지금까지의 삶의 궤도가 과연 유일하게 붙잡고 살아야 할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아슬아슬하게 실직자의 궤도를 붙잡고 있는 아버지 류헤이는 이미 켄지를 계단에서 구르게 하는 폭력을 저질렀다. 속으로만 삼키는 엄마는 모든 것을 버릴 듯 말도 안되는 가출을 감행한다. 어른들이 대책없는 방황은 삶의 궤도에 안주하는 것만이 구원이라 믿는 모든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대변한다. 이어리석음으로 인한 부모님의 부재로 켄지는 공권력이라 불리는 과도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 가족의 무시무시한 하룻밤은 그 결과가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궤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무언가가 열심히 달려가는 궤도 아래에는 그 궤도를 버티고 있는 땅이 있다. 우리가 움직이는 궤도는 탄탄한 땅 위에 존재한다. 우리는 잠시 그 궤도를 내려와 땅에 머무르며 숨을 돌려도 암흑의 밤이 보통의 우리를 함부로 침탈할수 없다. 구치소에서 밤을 보낸 켄지는 집으로 돌아온다. 메구미도 켄지 다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차에 부딪히고 낙엽 아래 쌓여있다가 깨어난 류헤이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한마디 한다. “어!” 어딘지 몰라서 놀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살아있음에 놀란 것일까. 그도 집으로 돌아와 식사 중인 가족들을 만난다. 그냥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보면 된다.
삼십 대 말에 만난 <도쿄 소나타>는 나에게 너무나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켄지의 입학 실기시험이 천국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현실성이 사라진 장면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십 대 중반에 이르러서 본 <도쿄 소나타>는 흔들리며 달려가는 삶의 궤도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궤도를 내려오면 든든한 땅이 존재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께닫게 만든다. 이 영화는 기요시의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류헤이의 삶은 본인이 불안에 흔들리고 때로는 무리한 행동을 저지르지만, 굳은 심지를 가지고 타지에서 삶을 살아내는 큰아들 타카시와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둘째 아들 켄지를, 기다릴 줄 아는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키워내고 있다. 시대는 진보적으로 바뀌고 류헤이는 젊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꼰대로 불릴 수 있는 겉모습을 가졌을지언정 흔들리지만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