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그려낸 첫 발걸음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가 만들어낸 이러한 이야기는 대부분 아주 평범하다. 파릇한 청춘의 시절에 첫사랑과 이별하거나 권태기에 이른 연인의 지난한 헤어짐 또는 학창 시절 상급학교 진학에 실패해 방황하는 등의 평범한 사람들도 어쩌다 걸쳐갈 수 있는 인생의 다사다난한 지점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영화에는 그만의 독특함이 존재하는데 이는 2000년대 초반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평범한 인생 속에서 인간사에 얽힌 치정 사건이 그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상을 걷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몰래 발에 걸리는 돌부리처럼, 이면에 있는 복잡한 치정 사건은 평범한 삶의 스토리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숨겨져 있을 듯한 이런 에너지는 1980년대를 지나며 급속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는 도시에서의 파편화 되어가는 인간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게다가 국공내전 이후 본토에서 건너와 대만을 살아가는 구세대와 그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산업화를 몸소 겪고 있는 신세대의 엇갈림은 복잡한 갈등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차근차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보이지 않는 내면을 서서히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능력은 에드워드 양의 첫 장편인 이 영화 <해탄적일천>에서 잘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이 보여주는 복잡한 인간 내면의 모습은 아마도 인생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정작 그 삶에 대해 전혀 학습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의 강압을 순순히 따르는 린자썬은 그로 인해 사랑하던 연인인 탄웨이칭을 버린다. 그러나 린자린은 오빠와는 다른 선택을 하며 과감히 집을 버린다. 각자의 선택 이후 13년이란 제법 긴 시간이 흐른다. 비록 성공해 금의환향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버려지고 떠밀렸던 탄웨이칭에게 린자린은 지나온 세월을 고백한다. 두 여인의 대화 속에서 화면은 린자썬과 탄웨이칭의 사랑과 헤어짐, 그리고 린자린과 청더웨이의 결혼생활을 마치 콜라주 하듯 사이사이에 배치한다. 영화적인 어떠한 기법도 없이 과거의 영상을 시간의 흐름처럼 끼워 넣은 편집은 독립영화의 여건상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과감함으로 인해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인 몽타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린자린의 현재를 이러한 과감한 과거 이야기의 편집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린자린은 자신의 13년의 세월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이라 고백하며 어떤 선택을 했었어도 같은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에는 1980년대라는 시대의 특성상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때 이해하기 껄끄러운 사고와 선택이 존재한다. 린자린은 오랜 결혼생활에서 닥친 위기가 두렵지 않았냐고 자신이 벗어나야만 했던 가족인 어머니에게 묻는다. 강압적인 남매의 아버지는 아주 어렸던 린자린의 기억 속에 현재의 자신보다도 더 엄마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과거를 살아온 엄마는 그 시대의 요구대로 정숙하고 반듯한 용납하기 힘든 결정을 보여준다. 강압적인 남매의 아버지는 변함없이 자기 자녀를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본인 인생의 숙제 정도로 인식한다. 그의 모습은 아직 남아있는 식민의 잔재와 변화하는 미래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세대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그 강압 속에서 린자썬은 나름의 행복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린자린은 휘청이는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인생은 모르겠고 어린 시절 엉뚱한 공부만 했다는 린자린의 고백은 시대를 초월한 결정적인 한마디다. 젊은 에드워드 양 감독 역시 린자린과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가 끝까지 그날 해변에서 일어난 일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을 그나마 관망할 수 있다는 것뿐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빠르게 성장하던 국가 중 하나였던 대만에서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산업화하고 도시화한 사회를 살아가는 도회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해탄적일천>은 그 포문을 연 첫 장편으로 그만의 인상을 한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절 영화 동지였던 허우샤오시엔의 <청매죽마>(or <타이페이 스토리>,1985)의 걸출한 연기의 시작을 보여주었던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