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영화 속 그들이 걷고 있는 공간은 누구나 언제든 걸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상의 삶이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알게 모르게 폭력이 벌어지기도 하고 설레고 아프기도 한 사랑이 시작되고 또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공기 속의 그들을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그들의 사랑을 한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따라 걸어간다. 걷고 있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지난여름, 갑자기 이제 시작인지 아직은 시작일 뿐인지 거침 없이 달려드는 상우의 해맑은 웃음에 경훈의 마음이 흔들린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이 주는 긴장 그리고 떨림. 사랑은 그들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아련한 석양에 어두워진 땅거미 속으로 묻힌 그들의 포옹이 아려온다. 많은 것을 생각해야하고 또 많은 것을 감내해야하고.
떠나버린 준영을 붙잡아 남쪽으로 향하는 기태, 사랑이란 이름으로 또 존재하는 이름으로 남길 바라는 기태의 절박한 사랑은 그들이 함께 떠나지 않으면 맑은 날의 물안개처럼 사라질 것 같다. 그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부딪힘. 머리 보다는 가슴이 먼저 움직이는 기태와 아직 머리는 갈레 길을 헤매는 준영. 그 여정이 결국은 함께하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등을 보이는 준영은 떠나고 남은 기태는 울부짖는다.
잊을 수도 없고 치유할 수도 없는 고통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 사람, 발을 내릴 수 없는 삶 속에서 부유할 수밖에 없었던 원규와 우연히 그 부유하는 공기를 붙잡은 태준은 원규의 고통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길고 긴 시작의 사랑을 한다. 다시 날아가 버릴 원규의 슬픈 얼굴을 향해 돌아보는 태준의 얼굴은 그에게 속삭인다. “내가 여기에 있어”라고. 그리고 그 속삭임이 그들을 따라 가는 나의 귀에도 들려온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이방인처럼 그들의 아름답게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헤맨다. 그들 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 없는 사람이 아닌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외침이 영화 전체를 통과해 흐르고 있다. 아직 그들은 사랑만을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모든 삶이 여기에 있다.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삶이 모든 사람이 걷고 있는 이 공간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