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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Apr 14. 2021

연휴 동안 뻘 짓 하다. (20070926)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3

 연휴 동안 했던 첫 번째 바보 짓은 로우 예 감독의 영화 <여름 궁전>(2006)을 본 바로 다음 <All the king’s man>(2006)을 연달아 본 것이고, 두 번째는 신경숙의 소설 [리진]을 다 읽고 바로 <데쓰프루프>(2007)를 본 것이며, 마지막은 열쇠를 실험실에 놔두고 문을 잠가버린 것이다(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문을 억지로 여느라 손에 멍들고 할 수 없이 경비 아저씨께 마스터키를 얻어서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있어야 할 열쇠는 보이지 않고. 불길한 마음으로 가방 밑을 더듬어 보니 가방의 주머니 밑에 구멍이 나서 열쇠가 긴 가방의 끝 천 사이로 흘러 들어가 있었다. 이런 바보!


 연휴가 이렇게 가는구나. -_-

 

 <여름궁전>을 보고 소설 [리진]을 읽으면서 온 몸이 뒤흔들리고 내동댕이쳐지는 감정의 충격을 받았다. <여름궁전>에서는 천안문 사태라는 역사의 격랑을 넘어오며 사랑의 실체는 사라지고 세월 속에서 깊은 흉터만 남긴 체 서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위홍과 자우웨이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 [리진] 속에서의 사랑은 영화에서처럼 깊은 흉터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으로 사람들의 운명을 잡아먹는다. 쟁취하려고만 하는 홍정우와 결국 떠나버리는 콜랭,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강연. 세 남자의 각기 달랐던 사랑과 극변하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참혹하게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린 책을 삼키며 리진은 죽어간다.

 

 사랑이란 아주 흔하고 단순한 언어 같지만 완벽하게 제대로 하는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을 거 같다. 연애를 하던, 연애와 관련된 뭔가를 하던 그것은 늘 다른 실체로 포장되어 눈을 흐리게 한다. 두 편의 작품 속에서 사랑하며 행복한 것과 사랑하여 고통스러운 것이란 결국 서로 다른 옷을 입은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하나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고통과 상처와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흉터를 남긴다. 결국 사랑은 없고 삶만 남는다. 그렇기에 <여름궁전>에서의 리티의 무덤의 글귀처럼 사랑을 알던 아님 알지 못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내려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여름궁전>을 보고 격한 감정에 완전히 휘둘려버려서 숀 펜, 주드 로 등이 나오는 아마 이 영화만 보았다면 재미있었을 것 같은 <All the king’s man>을 보다가 몸이 독감에 걸린 것처럼 아프고 힘들어서 그냥 나와 버렸다. 영화에 너무 몰입해서 감정이입을 하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어서 스스로도 좀 뜨악했다. 만약 개봉을 안하면 못 볼거 같아서 두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보려 한 건데 생각해보니 돈이 아깝다. 만약 <all the king's man>이 개봉한다면 영 억울할 거 같았다. (*생각해보면 로우 예 감독의 영화가 유독 나에게 이런 감정의 고통을 주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드니 좀 많이 없어졌지만 몇 년 후 <스프링 피버>를 보았을 때도 <여름 궁전> 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힘들었다. 그리고 결국 <All the king’s man>은 개봉관에서는 못 보고 IPTV를 통해 봤는데 생각보다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후진 영화에 비해 숀 펜 등 배우들의 연기는 역시 후덜덜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출근하듯 나가서 일찍 일을 마치고 근처의 극장이 옮겨 가면 자주 가기 힘들 거 같은 좋아하는 카페에서 연휴 마지막의 여유도 즐기고 커피도 마시며 1/4 정도 남은 [리진]의 마지막을 읽다가 또 <여름궁전>을 볼 때와 비슷하게 감정적 충격에 휘둘렸다. 이미 표도 끊어놓고 역시나 환불도 안 될 시간이라 할 수 없이 그냥 <데쓰프루프>를 보았는데 영화 보면서 한심할 정도로 언제 감정에 휘둘렸냐는 듯 통쾌하게 웃다가 나왔다. <그라인드 하우스>(2007)가 무척 보고 싶어 졌다. 내친김에 <인베이젼>(2007)까지 보러 갈려고 하다가 참고 집에 와서 위에 쓴 것처럼 실험실에서 생쇼를 하고 열쇠 때문에 난리 법석을 떨던 내 모습이 참 어찌나 한심한지. 감정이나 정서가 휘둘리면 정말 온몸에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데쓰프루프>를 보고 몽땅 날려버린 것 같아서 내가 물고기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휴 동안 별 허튼 짓을 다하고 다녔다. 이제 출근하면 많은 노동의 스트레스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리진처럼 책에 비상을 발라놓고 한 장 씩 삼켜 버릴까.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면 안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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