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랬어’와의 싸움
수목 관리를 하다보면 그동안 행해져온 별의별 근거없는 ’관행‘에 직면하고 부딪힌다. 교육기관으로부터 배운 이론과 개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격증 하나 없이 부풀어진 경력을 가진 기술자가 흐름을 주도한다. 특히 나뭇가지를 솎거나 짧게 자르는 전정은 계절적 시기가 중요함에도 ‘원래 그랬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자른다.
“나무 시원하게 잘랐네.”
“저렇게 자르는게 맞지.”
“잘 잘랐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는 나는 ‘그’ 주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짧은 머리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나무가 시원하다라. 그런데 그들은 시원함을 느낄까? 나무 입장에서 보면 강전정은 ‘시원함’이 아닌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생육 시스템 붕괴를 말한다.
우리나라 도심숲을 구성하고 있는 키 큰 나무는 주변 환경에 따라 안전, 재산상 보호를 위한 전정이 필수로 행해진다. 뿌리내린 나무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아무리 소중한 나무일지라도 인간의 생명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종종 내게 집 마당에 있는 큰 나무를 어떻게 다듬어야할지 물어보는 분들이 계신다.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아도 나의 답변은 단순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답이 정해져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자연재해로 인해 재산상, 안전상 피해가 발생하거나 주변 이웃들에게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면 과감하게 제거하고 키 작은 나무를 식재하길 권장한다. 의뢰인과 나와의 동상이몽이였을까. 의뢰인은 나무를 제더힐 마음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고소 작업 차량 한 대를 오전 임차하고, 발생하는 임목 폐기물을 처리할 비용 그리고 인건비를 생각하면 150만원이 훌쩍 넘어버린다. 이때 견적서를 받는 의뢰인들은 고민이 생긴다. 굳이 내가 이 돈을 지불하고 나무를 제거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라며 말이다. 결국 시간은 흘러가고 받았던 견적서의 시한은 지나고 장마철, 태풍 그리고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로 나무가 넘어져 큰 재해로 이어지는 뉴스를 접한다. 그때야 비로소 의뢰를 했던 나무가 눈에 거슬린다. 인생은 타협의 연속이라 하지 않았던가. 의뢰인은 저렴하게 나무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인터넷에 알아본다.
지자체 민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보가 풍부한 카페가 많다. 글을 읽다보면 누구는 직접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를 잘랐다고 하고, 누군가는 고가의 비용을 들여 깔끔하게 제거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지자체에 민원을 연속으로 넣었더니 해결했다고 한다. 의뢰인은 비용이 들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민원을 알아본다. 하지만, 의뢰인과 같 마음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다. 당연히 그는 예산상, 시간상, 순서상 이유로 후 순위로 밀려난다.
드릴로 구멍을 뚫어 농약을 쳐봐요.
비싼 견적서, 밀린 민원처리 순번으로 다른 방법을 알아본다. 드릴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 제초제를 넣으면 나무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더불어 수피를 벗겨내는 일명 환상박피를 함께 실시하면 효과가 더욱 좋다고 한다.
농약사에 방문한 그는 사장님에게 나무를 한 그루 죽이고 싶다고 고백한다. 농약사 사장님은 하늘아래 모든 작물을 초토화할 수 있다는 기깔난 농약을 한 병 추천해준다. 이제부터 나무는 내게 자연이 아닌 제거할 대상으로 변한다.
나무가 시들어간다.
효과가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마르고 수피가 벗겨지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무를 죽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댓글을 남기며 글은 재확산된다.
나무가 흔들린다.
잎이 모두 탈락하고 나무를 지지하는 뿌리가 썩어간다. 시간이 흘러 그는 나무 주변을 살펴본다. 줄기를 흔들어본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 줄기가 흔들린다. 이를 어쩌나. 본격적으로 나무의 복수가 시작된다.
나무의 복수
죽은 줄 알았던 나무는 죽지 않았다. 살아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이 나무가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그제서야 중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나무를 제거할 수 있는 아보리스트 팀을 알아본다. 현장을 방문한 아보리스트는 주변을 살피며 환상박피된 흔적, 제초제를 투여한 흔적, 수관이 모두 죽은 상태임을 살피고 줄기를 흔들어본다.
건강한 나무를 오르는 일도 힘든데 죽은 나무를 올라 제거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터. 근로자는 그들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제시한다. 이때 처음에 제시받은 견적서의 배가 된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의뢰인은 배가 된 견적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순간은 지금 뿐이다. 과연 무슨 선택을 할까?
우리는 나뭇가지가 모두 잘려있는 나무를 바라보면 자연스레 불쾌한 마음이 떠오른다. 표현할 수 없는 뭔사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나무가 살아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죽지 않았다. 스스로 죽을 수 없는 나무는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치는 나무의 모습을 보며 ‘시원함’이라 표현한다.
나무는 시원함을 알지 못한다.
아니,
나무는 시원함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