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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가 김정두 Aug 01. 2023

너는 어디서 왔니, 왕벚나무야

발전을 옭매는 출신(出身)

 동장군이 물러가고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봄이 왔음을 몸소 느낀다. 생명이 움트고 혹한을 견뎌낸 꽃봉오리에서는 얼마나 더 아름다운 꽃을 피어낼지 새삼 기대된다. 유독 사계절 중 봄이 짧게만 느껴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열흘 가는 꽃이 없다고 하는데 내 마음속엔 조금만 더 봄꽃을 즐기고 싶은 아련한 마음이 생긴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선 관광객 유치를 위한 '봄꽃축제'가 시작된다. 개화시기를 알려주는 기상청과 TV 스크린 속 봄꽃을 즐기는 젊은 부부가 나오면 당장이라도 연차를 써서 꽃놀이를 가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산수유,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매화나무 등 많은 봄꽃축제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나무는 단연 '벚나무'라 생각한다. 국립서울현충원 수양벚꽃, 여의도 벚꽃, 용인 에버랜드 벚꽃, 진해 군항제 벚꽃, 진주 화개마을 벚꽃, 대전 대청호 벚꽃 등 국내 수많은 지역과 장소에서 서로 경쟁하듯 '벚꽃축제'가 열린다.


 명절마다 보는 <타짜> 영화 속 대사나 봄마다 흘러나오는 <벚꽃엔딩>으로 벚꽃은 자연스레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우리에게 '벚나무'는 예쁜 연분홍색 꽃을 가진 나무이지만 베이비붐, 586세대에게 벚나무는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지곤 한다. 몇몇은 벚꽃 개화시기가 되면 국민정서에 맞게 일본 벚나무를 우리나라 고유수종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벚꽃축제는 이미 우리가 가진 문화가 되었다.’ VS ‘벚꽃은 친일잔재로 아픈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이 두 주장은 매년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된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331/118619082/1

https://www.etoday.co.kr/news/view/2236710


우리나라와 일본이 가진 꽃놀이 문화

상춘(賞春) - 봄을 맞아 경치를 구경하며 즐김

 두 나라는 비슷한 개화시기를 가지고 있다. 8세기부터 '봄꽃'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론을 바탕으로 '벚꽃'이 아닌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등 유실수의 식재 비중이 높았다. 특히 복숭아나무는 열매 수확을 통한 경제활동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복사꽃이 필 때는 남녀노소 모두 놀러 와 식사를 하거나 술을 즐겼다.

복숭아꽃

 일본도 마찬가지로 [에도 명소 꽃 달력, 1827]에 의하면 벚꽃, 매화, 동백, 복숭아, 등꽃, 철쭉, 모란 등 총 45개의 다양한 꽃과 나무가 열거되어 사시사철 꽃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 내 벚꽃은 단순한 봄꽃축제를 넘어 일본 자체를 상징하는 문화를 갖게 된다.

사진출처 : Instagram | tsumizo


벚나무가 사용된 기록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벚나무 

 기록에 따르면 팔만대장경판에 사용된 나무 60% 이상을 '산벚나무' 목재로 사용했고, 국궁(활)을 만들기 위해 벚나무를 식재했다는 설이 있다. 두 사례 모두 벚나무 '목재'를 활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를 통틀어 '벚꽃'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없을뿐더러 벚꽃축제도 없었다.

팔만대장경

일본 벚나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 794~1185) 문헌을 살펴보면 일본인들은 벚꽃을 그 어떠한 꽃과 비교할 수 없는 꽃으로 생각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도 벚꽃놀이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전국시대 이후 꽃의 수도라 불리는 '교토'엔 벚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었다. 교토가 가진 문화는 선진문화로 받아들여졌고 각 지방에선 서로 앞다투어 벚나무를 식재해 축제를 열었다.


 세월이 흘러 이를 증명하듯 오늘날 일본은 '전국 벚꽃 명소 1000개소'에 대한 개화 및 만개 예상 시기를 발표한다. 일본은 일찍이 벚꽃이 사람을 모으는 집객력(集客力)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아스카야마 벚꽃 놀이', 우타가와 히로시게 화첩 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새로운 상품종 등장

소메이요시노(そめいよしの) - 일본 왕벚나무

소메이요시노

 에도시대 말기 출현한 소메이요시노(そめいよしの)는 교토 소메이의 한 정원사가 판매한 품종으로 '산벚나무'와 비교했을 때 성장이 빠르고, 꽃이 밀집되어 화려하며, 잎이 섞이지 않고 접목이 용이해 값이 저렴했다. 식재된 '산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일본 왕벚나무)'로 세대교체가 되었고 일본 국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받았다.

 품종은 바뀌었으나, 메이지기의 일본에 있어서 벚꽃을 심는 행위는 근세 초기의 전국의 성주들이 교토와 같은 번영을 기원하며 자신의 영지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한 이래로, 근세 후기에 벚꽃의 경제적 효과 또한 기대하며 식수하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일 상춘문화와 근대 -벚꽃의 상징 변화를 중심으로-, 김정은

 

 문제는 이 '소메이요시노(일본 왕벚나무)'가 일부 제국주의자,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불순한 의도를 갖게 된다. 청일전쟁이 발발한 시점즈음 '벚꽃=일본 국화'라는 의미가 형성된다.

 1896년 국수주의자로 알려진 미야케 세쓰레이가 본인이 창간한 잡지 '일본인'의 표지를 벚꽃으로 바꾸었으며, 벚꽃에서 일본의 "굳은 절개와 지조"를 찾는 '벚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러한 벚꽃론은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는 청일전쟁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기념수로 심어야 하며, 수종은 '고래부터 우리 일본혼의 표상'인 벚꽃이 가장 적당하다는 식으로 나아간다.

한일 상춘문화와 근대 -벚꽃의 상징 변화를 중심으로-, 김정은


 또한, 일본인들은 타지에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본 벚나무'를 식재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실제로 상당히 많은 수의 벚나무를 우리나라 전역에 식재했다. 이 품종은 '왕벚나무'로 불렸다. 왕벚나무는 곧 일본을 상징했다.

육군 근위사단 장병 전용의 모장, 벚꽃을 배치한 해군사관 전용 모장, 벚꽃 문양이 들어간 자위대 깃발
가미카제 특공대원 가슴에 벚꽃이 달린 가지를 볼 수 있다.


한 번에 떨어지는 벚꽃 잎은 마치..

본격적인 일본 왕벚나무 식재

 경성일보 1933년 4월 27일 자 기사를 살펴보면 일제는 3년생 묘목 1,500주를 우리나라로 가져와 최초로 1907년 벚나무 묘목을 남산 왜성대 공원(倭城大公園)에 500그루를 식재하고 1908년 1909년에 걸쳐 소메이요시노 200주를 창경원에 식재한다. 그 외에도 일본인이 거주하는 장소, 개발지역 등 일본인 손길이 닿는 곳이면 모두 벚나무를 식재했다.


 일제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명하고 궁궐 안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만들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 시민공원이었고 식재된 벚나무는 1918년 벚꽃놀이 개시 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며 벚꽃이 가진 집객력으로 엄청난 흥행을 가져왔고 1924년 창경원 야간 벚꽃놀이가 시작된다.


 개화시기 창경원 입장객은 1922년 30만 명, 1924년 41만 명, 1940년에는 100만 명을 기록한다. 당시 경성인구는 1920년대 30만 명, 1940년대 93만 명이였다. 벚꽃이 가진 집객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1911년 조선에 건너와 15년을 산 일본인 관리가 엮은 '성상 15년(星霧十五年), 1926'에도 다음과 같이 조선 내 벚꽃에 대한 감회가 상세하게 나와있다.

벚꽃은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다. 이를 내가 조선에서 보니 민둥산, 황폐한 평야, 도회, 메마른 경지 촌락에 청신한 윤기와 색채와 여유, 그리움과 장대함을 점찍는 데는 아무래도 벚꽃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 고향을 멀리 두고 조선에서 일하고 있는 모국인의 향수를 누그러뜨리고, 그 땅에 친근함을 갖게 하고 내지 연장의 싹을 끌고 와 안주 생각을 굳히는 데 벚꽃은 없어서는 안 되는 국화여야만 한다.

 벚꽃 철에 조선을 여행한 자는 누구나 눈에 들어올 것이다. 도읍의 작은 공원, 시가지의 입구, 사사의 경내, 학교, 충혼사 주변, 새로 열린 시장, 시골의 내지인집, 또 작은 역이나 사택 등에는 반드시 크건 작건 벚꽃이 있음을 볼 것이다.


 벚꽃축제 문화가 없던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일본이 가져온 '벚꽃' 문화를 흡수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국민들은 어린 시절 바라본 벚나무는 일상적인 조선 봄 풍경을 대표하는 수많은 봄꽃 중 하나가 되었다.

1971년 4월 20일 봄맞이 벚꽃놀이가 시작된 창경궁 앞이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한국일보


 하지만, 일부 지식인층은 일제에 대한 반감으로 벚꽃을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유명한 염상섭(廉想涉, 1897-1963) 소설가는 조선의 벚꽃놀이를 한탄한다.

“요사이 조선에서도 벚꽃놀이가 풍성풍성한 모양이다.… 조선색과 사꾸라색이 어울릴지 나는 명언(明言)할 수 없다.… 벚꽃은 조선의 하늘같이 청명한 자연색에서는 제 빛을 제 빛대로 내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유착한 기와집 용마름 위로나 오막살이 초가집 울타리 이로 벚꽃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암만해도 ‘식민 사꾸라’라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벚꽃은 피었고, 꽃을 통해 특정한 관념을 상징하고자 하는 행위는 사군자의 매화나 국화 등의 예를 통해서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는 벚꽃에서 특정한 관념을 찾아내지 않았으며, 벚꽃의 계획적인 식수 또한 목재를 위한 예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심어지기 시작하던 벚꽃에 대해 조선인은 처음부터 일본의 상징으로 파악, 벚꽃의 보급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일 상춘문화와 근대 -벚꽃의 상징 변화를 중심으로-, 김정은


일본 국화(國花)는 벚나무가 아니지만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이 시작되는데...

한라산에서의 자생 왕벚나무 탐사를 앞두고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이 <동아일보>에 한국이 벚나무의 기원임을 주장하는 글을 실었다.

 쇼메이요시노(일본 왕벚나무) 품종은 일본을 상징했다. 이 사실에 대항하듯 1962년 박민규 국립과학관장은 왕벚나무는 한라산이 원산지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듯 2001년 3월 21일 국립산림과학원은 <일본의 나라꽃인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 보도자료를 낸다. 그동안 두 나라가 가진 왕벚나무 형태가 비슷해 정확한 검증이 어려웠지만 DNA 지문분석을 통해 일본산 왕벚나무와 국내에 식재된 왕벚나무는 제주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판단한다. 즉, 왕벚나무는 제주도 -> 일본 -> 한반도로 다시 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라는 사실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두 개체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다른 식물이라는 결론이 2018년 '게놈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 의해 밝혀진다.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 다른 벚나무 근연종 사이의 유전적 분화 정도를 보여주는 그래프. 백승훈 외 (2018) ‘게놈 바이올로지’ 제공.

 교신저자인 문정환 명지대 생명과학정보학과 교수님은 이번 자생 왕벚나무 유전체 해독을 통해 왕벚나무를 둘러싼 원산지와 기원에 관한 논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제주도 왕벚나무는 제주 것이고 일본의 왕벚나무는 일본 것이라 말했다. 이 두 종은 기원이 다른 별개의 잡종이었다.


일본 왕벚나무를 우리나라 왕벚나무로 교체?

우리나라에 식재된 벚나무

 2019년 산림청의 가로수 조성 실적에 따르면 국내에 식재된 가로수 825만 주 중 벚나무는 154만 주로 19%를 차지한다. 매년 15만 주의 벚나무 묘목이 생산되지만 유통되는 벚나무가 정확하게 어떤 종인지에 대한 명시가 불분명하다. 조경수로 판매되는 벚나무 품종이 일본 왕벚나무인지, 우리나라 왕벚나무인지, 산벚나무였는지 알기 어렵다. 정확한 종 명시가 안되어 있다.


 정확한 벚나무 종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로 일본 왕벚나무를 우리나라 왕벚나무로 교체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조사한 <국내 벚나무류 식재 현황: 분당중앙공원 일대 사례연구> 자료에선 2021년 4월 성남시 분당구 일대 약 6 km²내에 식재된 벚나무류 총 5,866주를 조사하였더니 그중 52.1%소메이요시노였다.


 벚나무는 자가불화합성이 강해 종간 잡종을 쉽게 형성하고 그로 인한 다양한 상품종이 탄생한다. 정확한 품종을 모르는 상태로 유통된 나무가 식재된다면 벚나무가 가진 특성상 우리나라 벚나무 고유종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벚꽃을 우리 문화로 재창조하는 수밖에

 벚꽃 원산지 논란은 재점화되어 2023년 국립수목원에서 3년간 철저하게 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밝혔다. 숱한 논쟁을 가져온 왕벚나무 원산지론은 이쯤 되면 과학계나 정치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들과 달리 문화계에 종사하는 분들은 좋은 전례로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를 예로 든다.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벚꽃놀이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민족주의를 앞세워 벚꽃놀이를 전면 폐지하거나 일본 왕벚나무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산지 논쟁은 100년이 넘도록 진행된 감정 소모전의 연장선일 것이다.


추신.

여러분에게 벚꽃은 어떤 존재인가요?






논문 출처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061725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1305350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272680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883244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3937851


자료 출처

https://ja.wikipedia.org/wiki/%E3%82%B5%E3%82%AF%E3%83%A9


사진 출처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113800320000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40907090003354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32015450004186


기사 출처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ecology_evolution/861962.html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ecology_evolution/1086008.html

http://ecotopia.hani.co.kr/?act=dispMediaContent&mid=media&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B%B2%9A%EB%82%98%EB%AC%B4&page=2&document_srl=271769&_ga=2.247676354.413775603.1690617661-602210389.1653205576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513509#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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