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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가 김정두 Aug 29. 2023

(구) 천원지폐와 금송(金松)

도산서원(陶山書院) 풍경 속 그 나무

도산서원(陶山書院)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추모하기 위해 1574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탐구하는 선비의 자세를 반영하여 간결하고 검소하게 지어진 건축물이 특징이다. 1969년 5월 28일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 후기 이름난 학자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안동지역을 여행하며 퇴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데, 먼저 청량산에 들렀다가 도산서원을 찾아 ‘도산서원을 배알한 기문[謁陶山書院記]’을 남겼다. 그 내용에는 먼저 “영남 사람들은 선생을 지극히 존경하여 선생의 어버이와 스승에 대해서도 모두 추중(推重)하고 향모(向慕)하는 것이 이와 같다. 하물며 선생의 유적이 있고 가르침을 베푼 곳을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공경하는 것은 어떠하겠는가.”라며 지역민들이 이황과 그를 제향한 도산서원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적고 있다.

- 우리역사넷, 유림의 참배소(도산서원)


도산서원 풍경

 도산서원은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 및 증축 사업을 진행하였고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0년 12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긴 금송(金松)을 굴취해 도산서원 경내에 기념식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한겨울에 식재를 해서 그런지 2년 뒤 식재된 금송은 고사한다. 그러자 당시 안동군은 예산 50만 원을 들여 한국원예건설을 통해 1973년 다시 금송을 식재하게 되며 도산서원 풍경은 1975년에 처음 발행된 (구)천원지폐 배경이 된다.


사진출처 :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3

  문제는 퇴계 이황의 정신이 깃든 성역화된 이 장소에 사무라이 정신과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나무인 '금송‘이 식재됐다. 금송은 일본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이며 일본 수목문화를 상징하는 나무가 우리나라 지폐에 그려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비판여론이 일자 안동시는 2003년 금송을 이전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한다. 그렇지만 당시 문화재청은 '대통령 기념식수'라는 이유로 도산서원의 금송 이전을 반대하며 이전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게 된다. 듣기만 해도 살얼음판인 이 논쟁으로 결국 2007년 이후 발행된 신권 천 원에는 금송이 사라졌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은 '금송 이전 청구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의정부 법원에 제기하며 "문화재청은 박정희 대통령이 식수한 금송은 고사되었고 안동시가 새로 식재한 사실을 알면서도 '대통령 기념식수'라는 이유로 이전을 금지한 부당한 행위라며 위자료 1000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대구지법 안동지원에 내게 되고 결국 금송은 내쫓기듯 도산서원 밖으로 옮겨졌다.

왼쪽 하단 타원형 표시된 나무가 금송(金松)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일본 특산종인 금송은 사무라이 정신이 깃들고 황실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상징을 찾을 수 없다. "꽃은 벚꽃이요, 사람은 무사"라는 일본 속담이 있듯 떨어지는 <벚꽃은 사무라이의 짧은 삶의 끝>을 상징했다. <일본 내각총리대신 문장>은 참오동나무이며 이 문양은 우리나라를 침범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문양이다. 또한, <일본 황실 상징은 국화>다. 국화문장은 일본을 상징하는 거의 모든 장식에 사용된다.

일본 사무라이, 내각총리대신 문장,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
일본여권과 일본 국회의원 뱃지에서 '국화문양'을 볼 수 있다.

  금송은 일본 사무라이와 황실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뿌리째 뽑혀나갔으며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가 이 나무를 배척하기 이전에 적어도 금송이 일본 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특정 개념을 상징한다면 보이는 문양이 존재해야 한다. 확실한 사실은 금송이란 수종은 일본 특산종이며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나무로 식재됐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금송이 사무라이를 상징하고 황실을 대표하는 수종이라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도대체 금송은 무엇을 상징한 걸까?


금송(金松) - 코우야마키(コウヤマキ)

 금송 학명은 'Sciadopitys verticillata'이다. 속명 Sciadopitys는 그리스어로 '우산'을 의미하고 pitys는 소나무를 의미한다. 즉, 우산모양을 한 소나무라는 뜻이다. 종소명 verticillata는 '소용돌이' 모양을 의미하며 가지 끝에 달린 잎의 형상이다. 이런 특징으로 유럽에서는 'Japanese umbrella pine'으로 불리고 일본에서는 ‘코우야마키(コウヤマキ)’라 불린다. 학명과 명칭에 소나무가 붙지만 소나무과가 아닌 낙우송과 이다.

 

 일본 코우야마키(コウヤマキ)가 어떻게 우리나라 금송(金松)이 된 걸까. 아마 내 생각이지만 햇빛에 비친 금송 잎이 황금색으로 보이고 두꺼운 침엽을 가지고 있어 '금송(金松)'이라 불러진 것 같다.


고야마키(高野槇) - 코우야마키(こうやまき)

 금송의 일본 표준 화명고야마키(高野槇)이며 와카야마현의 고야산에 많이 자라고 있으며 이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일본어 마키는 좋은, 훌륭한 나무라는 뜻을 가졌다)


 일본 불교 중 하나인 '신언종(9세기 초반 대승불교의 종파)'을 연 공해(법사)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고야산에서 꽃이나 과수 재배를 금지했다. 그래서 부처에게 제공하는 꽃의 대용으로 금송이 사용된다.

꽃 대용으로 금송이 사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추가 내용으로 2006년 9월 6일에 태어난 히사히토 신노우는 아키시노미야 문인 친왕 제1남으로 일본 황족이다. 그는 몸 주위 물건에 이용하는 휘장과 심볼로 '금송'을 받았다.


 그의 가문 문양은 황실을 대표하는 국화와 가문을 상징하는 솔송나무가 합쳐진 문양이다.

황실을 의미하는 국화와 가문을 뜻하는 솔송나무가  합쳐진 문양


금송(金松) 특징

 금송은 대표적으로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나무이며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다. 일본 혼슈, 규슈, 시코쿠 지방에 산재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단 1종만이 일본에 남아있다.


 두꺼운 잎과 원추형 수형이 아름다워 관상가치를 인정받아 전 세계 3대 조경수 중 하나로 영국왕립원예협회(RHS)에서 정원공로상을 수상한 나무이다. 주로 신사, 사원, 정원 등 다양한 곳에 식재된다.

금송 잎과 나무줄기
일본 신사, 사원, 공원에 식재된 금송

 나무줄기는 곧추서고 높이는 10~30m로 자란다. 생장은 더딘 편이나 뿌리활착 후 10년이 지난 후부터는 급속히 자라는 특징을 가졌다. 두꺼운 바늘잎을 가졌으며 상록성이고 황금색을 띤다.


목재 이용

 삼나무와 같이 땅속이나 물에 썩지 않는 특성이 있어 수로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내수성이 뛰어난 특징으로 수조, 목욕통, 싱크판 등 생활용품과 배를 만드는 용재로 사용되었다. 수피는 배나 물통, 우물 벽 등 누수를 막는 충전재로 사용되었다. 변색과 부식이 적어 건축재로도 사용되었지만 금송 수급이 어려워 축재량이 적었고 그에 따라 가격이 비싸다.


 고대 일본에서는 관을 만드는데 주로 금송을 사용했다. 실제로 백제 무령왕의 관이 금송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실은 당시 일본과 교류를 보여준다. 기록에 따르면 무령왕은 일본 땅에서 태어나 자라 금송으로 만든 목관을 사용했을 것이란 추측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무령왕릉 목관, 武寧王陵 木棺

이식 및 관리

 금송은 그늘이나 반 그늘 상태에서 잘 자라는 음수다. 묘목은 일부 해가림을 할 수 있으므로 빛을 가려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늘에서 키울 시 가지 밀도가 낮아져 늘어난 수형을 갖게 된다. 전정은 하지 않아도 자연수형을 유지하며 성장한다.


  병충해에 저항하는 능력이 강하고 건조한 환경을 잘 견디는 편이다. 묘목이 아닌 일정 수준으로 성장한 나무를 이식할 경우 고사할 확률이 매우 높다. 나머지 관리측면에서는 소나무와 동일하며 배수가 원활하지 않으면 고사한다.


결론

  우리나라와 일본은 서로 교류를 통해 수많은 나무가 오고 갔다. 대부분 한반도에 뿌리를 잘 내려 우리에게 이득을 주고 있는 나무들이다. 하지만, 특정인들의 주장에 의해 나무는 정치색 짙은 옷이 입혀져 이식되거나 제거되었다.


 민족성을 자극하는 단어는 단 하나의 합리적 의심 없이 우리에게 전파되고 각인된다. 듣다 보면 흥미롭고 솔깃하다. ‘반중 친중 친일 반일 반미 친미‘를 외치는 순간 감정은 충분히 자극되고 민족주의에 갇혀 발전을 저해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펼쳐지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굳건한 믿음과 우리 것이 최고라 외치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정신이 우리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국화‘는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밤이 되면 초를 켜고 국화 화분을 가져와 벽에 비친 국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겼다. 그런 국화가 오늘날 일본 황실을 상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는가? 그 당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가져온 국화는 없었을까?


 우리의 것만 쫓는 순간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 역행하게 될 것이다.


 

자료출처

https://www.andong.go.kr/dosanseowon/contents.do?mId=0101000000

https://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4/2013120402697.html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59005

https://ja.wikipedia.org/wiki/%E3%82%B3%E3%82%A6%E3%83%A4%E3%83%9E%E3%82%AD


사진출처

https://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400100068900000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A000095019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3

https://species.nibr.go.kr/species/speciesDetail.do?ktsn=120000059941

https://www.ytn.co.kr/_ln/0104_201812120539448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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