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노동의 산물
작년(22년) 최상품 '잣' 1kg 소비자가격은 10만 원이었다. 1960년대 시작된 산림녹화사업의 주요 조림수종으로 선정된 잣나무는 중부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조림되었다. 대략 1965년부터 84년까지 20년 동안 6억 75000만 그루 정도의 묘목을 심어졌다고 알려졌다. 어린 묘목 식재 후 15~20년이 지나야 잣을 수확을 할 수 있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영양도 풍부한 우리나라 잣은 대부분 홍천과 가평에서 수확된다.
잣나무는 수고 30m 흉고직경 1m가 넘게 자란다. 침형 잎은 5개이며 길이는 7~12cm다. 잎 뒷면에는 백색 기공조선이 5~6줄이 있어 수관은 녹백색으로 보인다. 잣송이는 실편 끝이 길게 자라 뒤로 젖혀지며 하나의 실편에 2개의 잣이 들어있다. 잣 한송이에는 대략 80~90개의 종자가 들어있다. 우리나라에선 '홍송(紅松)'이라 불리는데 잣나무를 벴을 때 심재부가 붉은색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학명은 'Pinus koraiensis Siebold & Zucc'으로 코라이엔시스(koraiensis)는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영명은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다. 삼국시대 중 신라에서 많이 자랐다. 그때의 잣 종자가 중국으로 들어갔고 중국은 이를 신라송(新羅松)이라 불렀다. 조경수로도 종종 쓰이긴 하나 최근 북미에서 들어온 '스트로브 잣나무'가 식재되고 있다.
소나무속 나무 중 약 20여 종 만이 열매를 채취해서 먹을 수 있다. 잣은 70%가량 지방유가 함유되어 있다. 올레산과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혈압을 내리게 하며, 스태미나에 좋다고 한다. 가평과 홍천에 가면 특산물인 잣으로 만든 술과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나무는 열매를 보존하기 위해 위협이 되는 요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한다. 즉, 잣은 나무 꼭대기에 열린다. 무려 20~30m 지점이다. (아파트 8~9층 높이)
결국 잣을 수확하기 위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 노동비는 그대로 가격에 반영된다. 국산 햇잣 100g 3개 세트는 40,000원으로 다른 임산물에 비해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잣 농가는 조금이나마 수확 가격과 소비자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1990년 1월 당시 임사빈 경기지사는 가평 잣 농가들의 인력난 호소에 "잣 수확에 원숭이를 투입하겠다."며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는 농담이 아니었으며 열대지방에서 야자를 수확하는 원숭이를 예로 들며 원숭이를 훈련시켜 가을부터 잣을 따게 하겠다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경기도 도농검국장을 일본과 동남아로 출장 보내 과실을 수확하는 조련사의 기법을 배워오라는 지시가 있게 된다.
하지만, 농가와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년 8월 20일~10월 20일까지 잣 수확기간 동안 2323명의 인력이 투입되는데 원숭이 사육현황은 현실적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라고 주장하며 "인력을 원숭이로 대체하기 위해선 1만여 마리 이상 동원되어야 한다."며 사육관리비용이 수확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라 예상했다.
반대의견과는 달리 임사빈 경기지사의 의견에 찬성하는 주장도 나온다. "새로운 지역명물이 될 것이다." 혹은 "원숭이도 사람처럼 일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결국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잣 따는 원숭이> 훈련이 시작된다.
결과는 실패로 끝난다. 잣나무는 송진이 흐르는데 나무에 오른 원숭이는 본인 털에 묻은 송진을 제거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앉아 털을 다듬기 시작한다. 송진 맛을 본 원숭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끈적이는 손을 바라보게 된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물풀을 손에 발라 장난치는 것처럼 말이다.
2000년 10월, 소형 헬리콥터에 박스를 설치해 사람이 올라타 잣나무에 근접하여 잣을 떨어뜨린다. 잣 수확기간 동안 하루에 지출되는 인건비만 대략 350만 원으로 생산원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일이 위험하고 어렵다 보니 수확은 더욱 어렵고 가격은 올라갔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초소형헬기 R-22와 KA-32T(산림청 카모프) 2대를 동원해 저고도 비행으로 잣을 채취하는 시도를 한다. 당시 R-22 임대료는 시간당 20만원이었으며 KA-32T는 산림청으로 무상임대를 받게 된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잣을 따는 속도보다 4배가량 더 빠를 것으로 예상했으며 손이 닿는 어려운 나무에도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초소형헬기 스키드(착륙장치)에 부착한 의자가 작은 탓에 40분만 채취가 이뤄지고 산림청 카모프 헬기는 20분 간격으로 3회 비행에 그치게 된다.
임대비용과 인건비 그리고 기상으로 인해 소형 헬리콥터를 활용한 잣 재취는 좋은 시도였지만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대형 헬리콥터로 잣 채취를 재시도한다. 소형헬기에 비해 대형헬기는 나무에 근접하자 프로펠러에서 나오는 강풍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잣이 떨어지게 되며 수확에 성공한다. 하지만, 다음 해에 잣이 열리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대형 헬기 프로펠러의 바람으로 인해 강한 스트레스를 받은 잣나무는 그 해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열기구를 사용한 수확도 실패했다. 고무 덮개를 나무에 덮어 해머로 나무를 내리쳐 잣을 떨어뜨리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원숭이, 헬리콥터, 열기구 등 다양한 방법이 잣 채취에 동원되었지만 모두 작업 효율이 떨어져 사람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채취를 해야 한다.
안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오늘 잣나무에 오르는 근로자들을 보면 잣 수확량이 떨어지고 무겁다는 이유로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나무에 쉽게 오르기 위해 '승목기'라는 장비를 사용하지만 이는 날카로운 날로 나무 수피를 찍어가며 올라기기에 '형성층(수피 안쪽에 원형으로 둘러싼 얇은 세포로 직경생장에 관여한다)'이 손상된다. 수피가 벗겨진 나무는 형성층이 노출되면서 그 부분이 고사한다.
양평에서 잣을 수확하는 '개울가농원' 박붕희 대표님이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면 "잣 따는 것은 사람이 올라가서 따야 하는 만큼 전문인력 확보가 가장 큰 관건"고 했다. 하지만, 어렵고 위험하고 체력소모가 심한 잣을 채취하는 일은 다른 산업현장과 동일하게 젊은 근로자는 없고 노령 근로자가 일을 맡아하고 있다. 외국 근로자도 종종 투입되지만 너무 힘든 나머지 대부분이 금세 포기한다.
아보리스트인 나는 가을이 다가오면 선배 동료에게 잣 수확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는다. 가면 진짜 개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다. 로프와 안전복은 송진으로 떡이 되고 맨몸으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맨몸으로 올라가는 근로자보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속도는 곧 수확량을 의미하는데 수확이 적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 당장 오늘 수입을 위해 안전을 묵인하며 나무에 오르게 된다.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사실을 모른다면 지도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
추신.
KBS 다큐 <나뭇가지 끝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 그 아찔한 인생이야기. '아찔한 인생, 잣 사나이들의 가을 연가>를 보면 잣을 따는 새터민 문광혁 선생님 이야기가 나온다. 이분도 맨몸으로 잣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잣을 채취 한다. 일이 고되지만 지켜야 할, 책임져야 할 가족을 위해 견디며 일을 하고 있다.
나도 아보리스트 기술을 배우고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었지만 그중 잣을 채취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 생계에 집중하다 보니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는 훈장이라 생각했었다. 비록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가을하늘 속 잣나무를 보면서 잣을 채취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다큐 속 문광혁 선생님과 잣을 채취하는 모든 근로자님들이 안전하게 일을 마치고 건강과 행복이 늘 충만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자료 출처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1130008001#c2b
https://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0&num=194873
https://www.kyeonggi.com/article/200009220097342
https://ypnongup.tistory.com/m/10603209
https://ko.wikipedia.org/wiki/%EC%9E%A3
https://www.youtube.com/watch?v=IoEDwYyQyxg&t=1972s
https://www.youtube.com/watch?v=FrC0ojjMh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