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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Jun 03. 2024

43세 프리랜서 워킹맘의 실직기

5년 동안 PM으로 일하며 온 정성을 쏟았던 매체 일을 그만둔 지 두 달이 지났다. 매일 분초를 다투며 버둥대다가 오랜만에 시간 여유가 생기니 처음에는 신나기만 했다. 여유롭게 평일 오전에 안산 둘레길을 산책하고 대성집에서 도가니탕을 먹으니 아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어떤 날은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정영선 작가 전시를 보고는 미술관 내 테라로사 카페에서 슬리피캣 디카페인 드립 커피를 마시며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었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 청진옥 해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대성집 도가니탕은 진리. 내 입맛은 아재 입맛.


게다가 일을 그만두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고, 그래서인지 지난 1년 간 고생하던 고관절염 통증이 싹 사라졌다. ‘이럴 수가…. 이렇게 빨리?’ 그 효과가 너무 즉각적이어서 나를 비롯해 가족들, 나의 담당 의사 선생님,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깜짝 놀랐다. 고관절 통증으로 고통받고 계시다면, 단연코 퇴사 추천, 힘들다면 적어도 책상에 앉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줄이시기를.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조금씩 무료함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듣고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와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지만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종종거려야 했기에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전업맘들도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 가방을 가지러 아이가 집에 들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하이톤으로 아이를 맞게 됐다. "상원아, 왔어??" 


또 즉각적으로 주머니가 얇아졌다. 매달 수백 만원씩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그동안 남편의 수입은 주로 생활비로 쓰고, 내가 버는 돈으로는 저축도 하고 여행비용으로도 쓰면서 풍족하게 지냈는데…. 당장 저축을 할 돈이 없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SPA 브랜드 둘러보면서 계절마다 쇼핑하는 게 낙이었는데 그마저도 부담스러워졌다. 내 집을 마련을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늦춰지고 있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조바심이 났다. 


어느 날 밤, 남편에게 물었다.


나: “오빠. 오빠는 내가 빨리 다시 돈 벌었으면 좋겠지?

남편: “어 그럼 좋지. 그런데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나: “그래? 그런데 내 월급으로 여행 다니는 거 좋아했잖아.”

남편: “좋았지. 그런데 꼭 돈 때문이라면 굳이 일할 필요는 없어. 조금 불편하겠지만 너 안 벌어도 생계에 문제는 없잖아. 다만 전업주부로 상원이만 보면서 지내지는 말라는 거지. 네가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

나: “… 그건 그렇지…”

남편: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또 그걸로 약간이라도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지.” 


남편이 이렇게 말해줘서 무척 고마웠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지금 당장 월급을 위한 소모적인 일 말고, 내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파고들었던 일을 실제로 펼칠 수 있는 방법을 더 열심히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훨씬 더 지속 가능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시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긴 호흡으로 고민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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