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아들내미는 오늘도 이빨을 안 닦고 학교에 갔다

영국 1년 살이의 기록들 10

by 물결맘

영국에 와서 내가 주로 하는 활동은 아이 돌봄이다.

한국에서는 나도 일을 하고 취미 생활로 바빴기 때문에 내 일상은 나와 아이 두 축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나'라는 한 축이 사라지고 아이만을 중심으로 내 하루하루가 굴러가는 느낌이다.


우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이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차려준다.

아이 교복을 잘 챙겨서 세탁하고 꼼꼼히 다려두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할 일.

이곳에서는 저녁 식사와 도시락 메뉴를 생각하고 장을 보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다.

고기와 자체 상품 디저트가 맛있는 M&S, 브랜드 제품을 살 땐 Waitrose,

아시아 식자재를 살 때는 시내 중국 마트를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동선이 꽤 복잡하다.

오후 3시쯤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한 후에는 국어 과외를 하던가 수학 숙제를 채점해주고,

다시 저녁 준비를 하고 상을 차리면 하루가 대략 마무리된다.

자고 다음 날 일어나면 또 다른 하루가 무한 반복...


이렇게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잔소리 양도 비례해서 늘었다.

그 전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것들이 눈에 훨씬 더 많이 띄는 매직.

"빨리 밥 먹고 교복 입고 학교 가야지."

"이빨은 닦았니?

"허리 펴고 앉아야지."

부터 시작해서

"수학 숙제는 다 했니?"

"사회 EBS도 봐야 하잖아."

"벗은 옷은 빨래통에 잘 넣어 놔야지."

"가방에서 물통과 도시락통은 꺼내놨니?"


예전에는 바빠서라도 하지 못했던 잔소리를 분초 단위로 쏟아내니 나도 너무 지치고

아이도 마음이 힘든 기색이었다.

이제 12살인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육아의 목표는 부모 없어도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성인으로 키워내는 거 아닌가...

아이 스스로 하루 해야 할 일을 챙기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매일 하는 잔소리 중에 딱 하나를 하지 말아보기로 결심했다.

일단 이번 달에는 학교 가기 전에 이빨 닦으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아이는 정.말.로. 이빨을 닦지 않고 학교에 갔다.

오후에 픽업 할 때

"엄마 너 이빨 안 닦은 거 알았는데 일부러 말 안했어. 이제 엄마는 아침에 너 이빨 닦으라는 말 안 할 거야."

라고 말했더니

"어쩐지... 오늘 하루 종일 입에서 약간 냄새가 나는 게 좀 찝찝하더라고요."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그래 이제 좀 스스로 챙겨서 닦겠지...' 속으로 생각했는데...


오늘로 3일 째 아들내미는 이빨을 닦지 않고 학교를 갔다.

기분 좋게 인사를 하면서 문을 나서는 아들의 모습에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나도 따라서 같이 웃어주었다. "허허허, 잘 다녀오렴."

'이러다가 이빨이 썩으면... 뭐... 그때는 이빨을 닦겠지... 모르겠다... 그런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잖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부엌으로 들어가서 설거지 거리를 챙긴다.


결국 아이를 믿는다는 건 불완전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해내기를 기다려주는 일일텐데...

하...그 길이 정말 쉽지 않다.

이렇게라도 곧 청소년이 되는 아이를 내 마음 속에서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결국은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될테니까!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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