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도기의 처음 시작은 작지만, 그 끝은 아주 크다.

나를 위한 시간, 첫 모임의 설렘을 안고 시작한 에세이 모임

by 정아

평가준비로 며칠 째 계속되는 야근을 하고 있던 차에 원장님은 오늘따라 저녁 야식까지 시켜주셨다. 오랜만에 시작하는 취미활동 에세이반 모임이 있는 날, 그것도 첫 모임이라 절대 빠지거나 지각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그걸 아셨나 보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 오늘은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시켜서 먹고 하자.”라며 원장님은 나가셨다.

“전, 오늘 야근 안 합니다. 약속 있어서 7시 전에 갑니다.”

“그럼 빨리 가요, 지금 가요”


그렇게 과장님과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따르릉”

“10분 후에 도착해요. 야식 지금 시키면 돼요”


하필 전화를 내가 받다니 아차 싶었다. 근처에 있는 중국집이 일찍 문을 닫아 김밥과 컵라면을 사 오겠다며 다른 직원이 잠깐 나간 사이의 일이었다. 결국 3명이서 야식을 먹었다. 7시 이전에 나와야 모임 장소까지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정리하고 바로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흘러 어느새 7시가 넘어있었다. 급하게 부랴부랴 단체 메신저 방에 메시지를 남기고 모임이 있어서 먼저 간다는 말을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임피에서 한길문고까지 열심히 달려서 도착했을 때는 모임 시간보다 40분가량 늦은 시각이었다. 첫 모임이라 설렘과 약간의 떨림이 있었기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책도 사고 다른 사람의 글도 읽어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물 건너갔다. 쭈뼛쭈뼛 들어가서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작가님이 하는 말을 받아 적기에도 버겁게 시작된 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지각생이 되었다.

“왜 이 모임에 들어오셨어요?”


잠시 후에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왜 이 모임에 신청하고 참석하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올 초에 많은 생각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모임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망설임 일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어 신청했다.

무언가 숨을 쉴 틈이 필요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 나를 위한 시간, 가족을 위한 마음, 건강을 챙길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의, 딸아이의, 나의, 가족들의 생일을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휴대폰에 메모를 해놓은 엄마의 제삿날도 챙기지 못한 채 밤늦게 서야 기억이 났다.

안면도 바닷가 바람이 차가운 늦겨울


주말이면 몸이 아파 몸살감기약을 먹고 누워 지내고, 컴퓨터 앞에서 일을 했다. 아예 출근을 하는 날이 많아 제대로 된 주말을 보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사명감과 소명의식 등을 내세워 포장하기에는 나를 챙기지 못해서 오는 ‘소진’이 온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다른 선택 또한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일이 나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지, 무얼 할 때 편안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나를 회복하기 위한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이 에세이 쓰기 5기 참가 신청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시도해보고 싶었다.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시작하고 싶다는 갈증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필사하는 문학소녀 코스프레도 해보았고, 시를 쓰겠다며 이것저것 끄적거리기도 했었다고 하면 딸아이는 “엄마가?”라며 웃어버렸다.

청소년을 만날 때 자주 했던 말처럼 “각도기의 처음 각이 정말 작게 움직여도 멀리 나가면 큰 각으로 벌어지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점보다 더 작아서 보이지 않는 변화일지라도 시간이 흘러 성장한 후에 보이는 그 변화는 엄청 크게 표시가 날 거야”라는 그 말을 지금은 나에게 해주고 싶다.

오늘 모임은 나에게 작은 움직임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부터 나는 노년기에 가질 수 있는 나의 또 다른 명함 하나를 만들어 간다.


#일상 #행복 #에세이 #글쓰기 #모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풀하면서 얻은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