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벚꽃잎이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고 있다. 어느새 봄이 오는가 싶다가 어느 날은 여름 같은 날씨로 겉옷을 벗게 한다.
계절이 흘러감을 잊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다른 직원이 받았는데 아무 말씀 없이 그냥 뚝 끊더라고 했다.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아보니 어르신이 수줍고 작은 목소리로 나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 집에 잠깐 들르라며 “꼭 오세요, 꼭!”이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나는 퇴근 전 5시경에 잠깐 들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순간 내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조그만 미소가 번졌나 보다. 옆에 있던 분이 무슨 좋은 소식이기에 살포시 웃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그냥”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아차’ 하며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이런 어르신 댁에 잠깐 들르기로 했는데 어쩌나...”
어르신 전화번호를 찾아 오늘 못 가게 되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까 내일 오전에 들러 달라고 당부하시고 다시 ‘꼭!’ 이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다.
다음 날 오전 외근을 나가는 길에 잠깐 어르신 댁에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어르신은 마당의 조그만 밭에서 풀을 메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별거 아닌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며 집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들고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이거는 내가 밭에서 캐서 개떡을 만들었어. 나는 안 달게 먹어서 달지 않은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이거는 달래, 마당에서 조금 캐서 넣었고, 이거는 상추, 어제 교회 갔는데 목사님이 또 조금 주셔서 같이 넣었어요”
“이거는 쑥인데 국 한번 끓여 먹을 정도밖에 안 돼요. 이건 파, 쪽파인데 나는 많아. 그리고, 이거는 가시오갈피 새순 먹을 수 있을지 몰라 이건 살짝만 데쳐서 먹어야 해요. 그냥 생으로 먹어도 되고 쓸 텐데 먹을 수 있을런가?”
“개떡은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서 쪄서 먹으면 좋아요”
“별거 아닌데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해요. 바쁜데 오라고 한 건 아닌가 몰라요”
수줍게 웃으며 말씀하는 모습이 소녀 같다.
쑥으로 장식한 손으로 빚은 화전
작년 이맘때쯤 어르신을 처음 뵈었다. 첫인상도 소녀 같고 수줍게 말씀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어느 날인가는 지나가다 들러서 안부를 여쭈었더니 주방에 후다닥 들어가서 나물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항상 무언가를 주고자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같아 나는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어르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돌아가신 시아버지 생각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항상 갈 때마다 무언가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모습,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투정처럼 한마디 하시던 시어머니, 시어버지가 떠난 지금은 시어머니께서 챙겨주려고 항상 무언가를 준비하고 전화를 한다. 들렀다 가라는 말씀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거나 사다 놓고 가져가라고 하는 그 말씀이 요즘은 미안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