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렇고 그런 나의 과거

by 김카잇

나는 입사한 지 2년이 되도록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중 가장 문제인 것은 '입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한 주에 몇 번씩 기획 회의를 하는 마케팅팀에 있으면서, 입을 열지 않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장님께도 아주 큰 문제였다. 잠자코 기다려주시던 팀장님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셨다. 회의 도중에 지적해서 말도 시켜보고, 회의가 끝나고 따로 남겨 왜 말을 하지 않는지도 물어보고, 화도 내고, 혼도 냈지만.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왜 말을 못 하는지 같이 찾아보자고 하셨다. 원인을 알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고.


나는 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나의 과거를 들추다 다다른 곳은, 어린 시절 우리 집 거실이었다.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다. 저녁에도 형광등이 꺼져있었다.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지만, 소리는 들리는 둥 마는 둥 했다. 텔레비전에는 빨간딱지가 붙어있었고, 어린 나는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다락방에 숨어 있었고, 우리 가족 모두 숨을 죽이며 살고 있었다. 회의 때 말 못 하는 이유를 찾으면서 왜 여기까지 온 건가 싶어 얼른 정신을 차렸다.


팀장님께는 "가족 영향인 것 같다." 하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팀장님께서는 "태형 마음에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앉아 있구먼." 하셨다. 팀장님은 그 힘든 시절을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고 하셨다. 팀장님은 기독교 신자신데, '고해성사'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자신이 지은 죄를 이야기하는 것, 그러니까 직면하는 것이 용서받는 첫걸음이라고. 태형, 너의 과거가 죄는 아니지만, 아픔 역시 직면해야 극복해 낼 수 있다고. 2년을 기다려주신 팀장님께 죄송해서라도 이번만큼은 팀장님을 믿어야 했다. 말이 어렵다면 글로라도 누군가에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여기다가 남기는 글들은 팀장님만 볼 수 있었던 컴퓨터 문서에 썼던 나의 과거 이야기들이다. 팀장님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재밌다’고 해주셨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잠깐 쓰다 말았던 나의 이야기를 누구나 볼 수 있는 이곳에다 다듬어 조금씩 써보려고 한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잘 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은 팀장님이 붙여주신 '달빛모텔 아이'. 이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날, 아버지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는 날, 내 마음, 내 몸 곳곳에 있는 어두컴컴함을 벗어버릴 수 있는 날. 그런 미래가 있길 바라며, 그렇고 그런 나의 과거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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