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버전 퇴직. 일상

07:30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듯이

by 김기원

서재로 돌아왔다. 책상을 두니 서재가 되고, 잠을 자니 침실이 된다. 화분 몇 개를 놓았더니 햇볕 따사로운 날 온화한 온실이 된다. 라디오의 음량을 높여 음악에 집중하노라면 감상실로, 붓펜을 들어 명문을 따라 쓰면 서실이 된다. 가끔은 화실도 되고,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면 작업실도 된다. 대개는 은행 것이거나 남의 것이기 십상인 넓고 넓은 세상이지만 마음 받아 줄 작은 구석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공간은 운동장이다.

천만년이라도 지난 듯 아득한 삼십 대의 바깥 양반 시절, 핏속에 지방이 많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늘 지방에서만 살아서 지방이 많을 줄은 짐작했지만 핏속까지 지방이 많을 줄이야. 원하기만 하면 지방쯤이야 어디에 있든 뚝 뗄 수 있으리라 믿던 때라, 기름진 음식만 조심하면 금방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대개 사악한 것들이 그러하듯이 방치된 지방은 스스로 떨어지지 않는다. 피부 아래든 혈관 속이든 암살을 계획하며 조용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불길한 증후들이 쌓여갔고 암울한 수치는 거듭거듭 높아졌다. 더 이상 경고음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불혹을 지나는데 아직 돌봐줄 생명들이 있어서였다.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드디어 결심했다.

사는 내내 운동과는 줄곧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운동이라는 말이 금기어는 아니지만 금지어인 양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둥그런 공은 피해 다녔고, 다른 이와 주고받으며 하는 운동은 필연 승부가 있거나 민폐가 있으니 싫었다. 숫자를 다퉈야 하는 운동이라면 천성이 날래지 못해 늘 불편했다. 근력이나 유연성이 현저하게 적다고 믿은 탓에 숙명이라 여기며 살았다. 스스로가 세뇌하는 부당한 믿음은 모든 가능성을 닫았다. 그러다 막상 뭐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한 때는, 제대로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것이 거의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젓가락이라도 무거운 걸 써야 하나, 아니면 숨이라도 거칠게 쉬어야 하나를 고민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기억나고 만만한 운동이 국민 체조였다. 국민 학교 시절이라 국민 체조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아침 일찍 운동장에서 하던 체조를 한 세대도 더 뛰어넘은 시간에 홀로 되살리려 했다. 기억이 온전하진 않았으나, 몸으로 배운 기억이라 머리로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생존에 필요한 기술들은 어릴 때 몸으로 익혀야 한다. 끝내 기억나지 않는 동작들은 비슷한 동작으로 꾸며 넣었다. 기본 골격은 국민 체조지만 근본 없는 다양한 동작들을 덧붙여 맨손 체조를 시작했다.

맨손 체조의 동반자는 교육방송이다. 이십 분 단위로 내용이 바뀌기 때문에 시간을 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출근 준비가 바쁜 바깥 양반 시절에는 방송 하나가 끝날 때까지가 적정한 운동 시간이었다. 뭐든 하다 보면 시나브로 늘게 된다. 이십 분도 길던 맨손 체조가 시간도 늘어나고, 늘어난 시간에는 짬짬이 수집한 다른 동작들을 추가했다. 영원히 남인 줄 알았던 운동과 이제는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작이 익숙해지니 움직임이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익숙한 그때가 변화가 필요한 때다. 익숙함을 즐기다 보면 필연 권태가 따라온다. 변화를 도모했다. 체조 후에 팔 굽혀 펴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도 추가했다. 동영상 속에 그럴듯한 동작도 빌려왔다. 생활 용품점에서 사 온 아령을 무게별로 준비해서 힘쓰는 동작도 넣었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동작들을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며 드디어 한 시간 남짓이 걸리는 집사람표 아침 운동을 구성했다. 언젠가 익숙해지면 또다시 새롭게 바꾸겠지만, 지금은 지금의 집사람표 운동을 한다.

예전에 듣던 말과 다른 말들을 듣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피부 밑 깊숙하게 숨어 있던 핏줄들을 도드라지고, 각종 근육들의 위치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못 입는다고 치워 놓았던 옷들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이미 버린 옷들이 생각나 아까웠다. 무엇보다 거울 속에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원하는 대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뚜껑을 덮은 컵에 벼룩을 넣어 두면, 뚜껑을 열어도 벼룩은 컵 높이까지만 뛴다고 한다. 지난날 스스로 뚜껑을 덮고 살았다. 뚜껑을 덮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보이지 않는 뚜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늦은 것 같았지만, 그때가 남은 생 중에 가장 빠른 때였다. 거창하게 시작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질릴까 봐, 작은 몸부림으로 시작했다. 뚜껑은 조금씩 열렸고 언젠가는 다 열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높이 뛸 수 있다.


정식 버전 퇴직 이후에도 운동은 계속된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하기 싫고 하지 않으면 찜찜하다. 하고 나면 개운하고 뿌듯하다. 요즘은 다리 쫙 벌리기 연습을 한다. 아홉 시 십오 분을 다리로 표현할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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