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버전 퇴직. 일상 10

07:30 아침 운동은 방해하지만 짠한

by 김기원

집사람표 운동을 하고 있노라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다. 암흑의 방해자는 조용히 다가와 운동자의 주변을 맴돈다.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암흑의 방해자는 필살기인 가냘픈 소리를 날린다. 필살기에 맞았으니 어쩔 수 없이 운동을 멈추고 방해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기분이 좋아진 방해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예 누워버린다. 쓰다듬길 멈추면 다시 주변을 맴돌며 필살기를 날린다. 다시 쓰다듬는다. 몇 차례 반복이 있은 뒤에야 그래도 아쉬움을 남았다는 듯이 어슬렁거리며 운동장을 떠난다.

아침 운동의 방해자는 단풍이. 단풍이 고운 어떤 날, 집에 와서 단풍이라 이름하였다. 고운 이름과는 달리 이름을 받은 날부터 이름값을 하지 않았다. 가장 나중에 왔건만 가장 많은 것을 가지려 했고 나눌 줄을 몰랐다. 먼저 온 존재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했다. 사람도 어려운 배려를 사족계 고양이에게 바라다니. 살이를 같이하면 서로 닮는다는데, 사족계와 살다 보니 생각도 비슷해지는 것인가?

단풍이는 식구 많은 집에 하나쯤 있을 법한 말썽꾸러기 담당이다. 함께 사는 존재들을 성까지 부를 때는 좋은 일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가능은 하지만, 성까지 부드럽게 부르기는 쉽지도 흔치도 않다. 대개 성을 붙여 부를 때는 원죄부터 시작해서 모든 죄를 낱낱이 캐서 따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낼 때다. 안타깝게도 단풍이는 성을 붙여 부르는 일이 잦았다. 오직 성을 붙여 부르기 위해 다른 사족계 고양이가 갖지 않은 독자적인 성도 가지고 있다. 당. 이름을 붙이면 당단풍. 단풍나무 중에 잎이 크고 색이 고운 단풍이 당단풍이다. 당단풍만큼 곱기를 바랐건만 바람은 그저 헛된 바람일 뿐이다.

이름은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도 나타내지만, 이름 짓는 이의 바람도 담겨 있다. 바람처럼 헛되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름을 짓는 자들은 깊은 바람을 이름에 담는다. 오로지 이름 받을 자를 위한 순도 높은 바람이 이름에 담긴다. 바람을 바람처럼 날리지만 않고 살아도, 이름값만 하고 살아도, 삶은 더없이 훌륭해진다. 하지만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여주는 마술 같은 일이라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풍이처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 사족계의 아픈 손가락인 단풍이. 하는 행실 때문에 아프지만 아픈 만큼 돌봄을 받지 못한다. 뇌전증. 단풍이의 아픔이다. 흔히 간질이라 불린다. 어떤 병은 이름만 알아도 절반은 치료한 것 같은데, 이 병은 이름을 알면 더욱 아득해진다. 끝이 없는 가시밭길 위에 선다.

길거리를 헤매던 단풍이가 집에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경련을 했다. 허였고 찐득한 거품을 입에 물고, 온몸이 나뭇동가리처럼 굳은 채로 온몸을 떨었다. 손가락을 넣어 거품은 닦아 냈지만, 처음 보는 발작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삼십 초쯤 되는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높은 곳에서 경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급히 단풍이를 데리고 야간 진료를 하는 동물 병원으로 갔다. CT 찍었다. 다음날 MRI를 찍어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며 다시 오라고 했다. 확실한 진단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역시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지역 대학의 수의대 부속 동물 병원으로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결과는 뇌전증. 하루에 세 차례씩 약을 먹여야 했다.

거리의 고된 생활 생활 탓인지, 단풍이는 눈치가 빠르다. 약을 준비하는 모습만 봐도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꼬부라진 꼬리가 빠지도록 도망간다. 거리에 사는 고양이들 중에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꼬리가 꼬부라지는 경우도 있다. 거리 출신임을 나타내는 누런 꼬리를 흔들거리며, 거실로, 베란다로, 안방으로 도망친다. 그러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때가 약을 먹일 절호의 시각이다. 약을 먹은 단풍이는 화가 잔뜩 나서 꼬부라진 꼬리를 흔들며 달아난다.

어둠을 함께 헤쳐 나온 존재들끼리는 단단하게 연결된다. 사족계 첫 번째 고양이 랑랑이도 처음 왔을 때는 병원에 다녔다. 다 지나갔다. 그리고 계를 뛰어넘는 연결이 남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풍이의 병도 언젠가는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뒤에 이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연결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대가 기대로만 남아야 할 때, 노력이라는 말처럼 허망한 말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추격전은 끝나지 않는다. 함께 하는 남은 모든 날 동안 추격전도 함께 해야 한다.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할 수 없으니, 그 결말 뒤에 있을 단단한 연결은 생길 수 있을까? 고민 중에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흘러도 단풍이는 여전히 말썽꾸러기다. 다른 사족계의 자리를 빼앗고, 이족계 음식에 손을 대고, 물건을 떨어뜨린다. 모든 것이 자기 것이고, 어떤 곳도 자기 영역이 아닌 곳이 없다. 나중에 왔으나 최고 아닌 최고로 군림한다. 신기한 것은 사족계의 다른 고양이들이다. 단풍이의 아픔을 알아서 그런 것인지, 봐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힘으로 밀리는 것인지, 말썽을 부리는 단풍이에게 타격감 없는 솜방망이질만 하거나, 하찮은 하악질만 할 뿐이다. 사족계는 기억을 기억하지 않아서 어울려 산다. 그래서 오늘도 사족계는 평온하다.

끝에 대한 기대마저도 잊어야 할까 보다. 기억을 끝없이 기억한다면 사족계는 평온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은 일상의 보석이지만, 보석을 먹으며 일상을 살 수 없듯, 기대는 내일의 희망이지, 오늘을 살아주진 않는다. 오늘은 당장 오늘의 추격전만 끝내야 한다. 당단풍! 네 이놈 게 섯거라.


매일매일 추격전이 쌓인 자리엔 애잔함이 자랐다. 조금씩 자라더니 어느새 이족계와 사족계를 연결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보석 같은 기억으로 단단하게 연결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꼬부라진 꼬리를 보면 쫓는 동안, 쫓기는 단풍이의 등허리에서 짠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듯 서로 이어지고 있었다. 베타버전 퇴직 이전에도, 정식 퇴직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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