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0. 땅땅거리며 살 수 있는 땅을 찾아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었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거둬들여 겨울이면, 겨울이면 뭘 해야 했더라? 어릴 때 신나게 불렀던 노래처럼 살고 싶었다.
젊은 바깥 양반일 때도 땅땅거리며 살 수 있는 땅을 갖고 싶었다. 강아지가 숨차게 뛸 정도의 너른 대지 위에, 살림을 위한 소박한 집을 짓고, 작으나마 책을 위한 공간은 따로 두고, 나머지는 잔디에 양보한 집을 꿈꿨다. 아가들을 키우는 집에서 나들이 할 수 있도록 한켠에 작은 오두막도 만들고, 크지 않은 텃밭에 철에 맞는 푸성귀를 심어 그것으로 식탁을 차리는 곳. 아담하지만 짜임새 있는 정원에서 꺾어온 꽃으로 장식한 식탁에서 오순도순 밥을 먹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나이 든 바깥 양반이 되었을 때, 늦은 감이 있지만 꿈꾸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대한 감각 없이 땅땅거리며 살 수 없었다. 째깐한 낭만 한 스푼을 치려해도 그에 따르는 쓰디쓴 맛을 각오해야 했다. 남들처럼,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산다는 말속에서 남은 확실히 나는 아니었다.
산다는 것이 타협의 결과라는 것을 현실로 느꼈을 때, 촘촘한 아파트 한 귀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꾸다와 살다가 거래해서, 꾸던 꿈을 건네주고 돈을 꾸어 현실 공간을 마련했다. 안온한 보금자리보다 환금성을 따지는 얄팍한 셈속을 온몸으로 익혔다. 타협했다지만 차선이 아닌 것처럼 안락하고 달콤한 현실이었다. 달콤함은 으레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이다. 그리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그리워질 만큼 세월이 흘렀다. 세월은 힘도 세고 빨랐다.
촘촘하게 세워져서 빈틈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아파트였는데, 장성한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표가 났다. 고양이들이 아니었다면 쓸쓸할 뻔했다. 지금이라면 저 푸른 초원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젊어 시작한 초원 생활은 인이 배겨서 견디겠지만, 나이 들어 시작하면 굳은살이 박이기 전에 끝날 것이다. 먹지 않으면 불안한 약물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육신에게 초원은 손이 닿지 않는 너무 먼 곳이었다. 앉으나 서나 신음소리를 달고 사는 생활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초원이었다.
도시는 어쩌자고 이리 편한 것인지, 마수처럼 휘어잡았다. 슬리퍼를 신고 가는 마트는 텃밭이 부럽지 않았다. 구석구석 꾸며진 공원들과 길목마다 있는 꽃집들이 정원을 대신했다. 초원 위의 푸른 집은 잊혀진 유행가 자락이었다. 안부보다 먼저 질병 자랑 대회를 열기 일쑤지만 조촐한 관계가 살아 있는 이 도시가 아니라면 어디에서도 웅크리고 살 자신이 없었다.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촌스러운 도시인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간직한 낭만이 채 다 마르지 않은 수채화처럼 남아는 있다. 길모퉁이 작은 집에, 책도 팔고, 책도 만들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업실이자 책방이자 공방이며, 찾아오는 사람들과 믹스커피 한 잔을 나누는 찻집인 공간을 갖는 것이다. 땅땅거리며 살 수는 없지만 꼬물거릴 땅뙈기 하나만은 갖고 싶었다.
언젠가는 허연 눈이 내린 머리 때문에 책방마저 귀찮아진다면, 저녁 한 끼를 만들기 위해 종일토록 준비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부를 사람도 올 사람도 없는 식탁이라면 길고양이라도 앉혀 저녁을 나누고 싶다. 이른 아침 장을 보고 왼종일 씻고 썰고 익히고 담아낸 한 접시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래서 매일매일 부동산 정보를 찾는다. 아는 것 많고 발빠른 초록창으로 땅땅땅 땅을 찾는다. 어느새 밤이 깊어진다. 어두워진 밤처럼 보이지 않고 멀어서 닿지 않을 별 같은 꿈을 그려본다.
바깥 양반이던 시절에는 주로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 안에서 찾다가, 퇴직 이후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찾는다. 그리고 지금은 잘 안 찾는다. 현실의 안락함은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이다. 현실과 다시 타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