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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교사 나른이 Nov 22. 2024

나와 불면증

삶과 자연에 대한 겸허함의 자세를 배우다

 '째깍, 째깍, 째깍..'


 불면증을 겪어본 이들만이 안다. 시곗바늘의 소리는 생각보다 크고 거슬리며, 그 소리는 잠을 방해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그 해 여름, 나를 괴롭히던 것은 더위, 습기, 모기 같은 번거로운 걸리적거림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신체와 정신의 부조화로 인해 꽤나 고통 받았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이 피곤하다고, 휴식해야 한다고 세포 하나하나가 울부짖는 것만 같았던 신체. 그리고 쉬는 법을 망각한듯 했던 낮이고 밤이고 각성되어있던 정신. 이 둘은 좀처럼 타협하지 못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불면의 시간을 겪으며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 여름, 나는 임용고시 재수생이었다. 한 번의 낙방 이후로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육대학교 졸업장으로는 사기업 취직이 어렵기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교단에 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밥벌이조차 못 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합격한 동기들의 메신저 프로필이나 sns에 올라오는 학교 사진들, 교직 일기 등을 보면 스스로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내 안의 괴물은 조급함과 불안함의 감정을 먹고 몸집을 키워 어느 새 나를 통째로 잡아먹고 말았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괴물은 결국 나를 불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구렁텅이 안에는 불안, 조급함, 강박, 자괴감 등의 이름을 가진 뱀들이 가득했다. 그 뱀들은 차례로 목을 조르며 내 귀에 얼굴을 파묻고 내가 얼마나 형편 없고 보잘것 없는 인간인지 끊임 없이 속삭였다. 불면의 구렁텅이 안에서 악한 뱀들과 싸우며 외로운 싸움을 지속했다.


 불면증 환자에게는 매일 밤이  다가온다는 자연의 이치마저 두렵다.  남들은 밤이 되면 치열한 일상의 매듭을 짓고,  매서운 겨울 바람을 피해 짚으로 파고드는 겨울 벌레처럼 포근한 이불 속으로 도피해 안식의 시간을 보낸다. 모두에게 평온하며 다정한 밤이 나에게만 무서운 얼굴로 윽박지르는 듯 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억겁의 시간 같았다. 오늘 밤도 편히 쉬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심장은 빠른 속도로 박동했으며, 내 온 몸은 경직되고야 말았다. 긴장을 풀고 편히 생각하려 해도 불면의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어 온 몸을 옥죄었고, 경직된 몸은 그 날도 쉼을 얻지 못했다. 어둠이 드리운지 오래인 고요한 방은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가득 채웠다.


  영원히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던 불면증은 현재 거의 사라진 상태다. 불면증의 해결책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웠고, 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또 좌절했다. 불면증에 좋다는 영양제, 약 등 다양한 해결책들을 모색해보았고, 시도해보았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약이 아닌 결국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자연에 나를 맡기는 것이었다.


 임용고시에 합격, 안정된 미래... 무엇 하나 오롯이 나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던 오만함이 결국 인간의 본능인 수면까지 앗아간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 그 이후의 일은 그저 신께 맡기자. 스스로의 삶에 예의를 지키되, 세상을 통제하려는 교만을 저지르지 말자. 수없이 되새기며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오롯이 내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 과정에서 마음의 짐은 한결 가벼워졌다. 스스로를 옭아매었던 짐을 내려놓자 한결 숨통이 트였다.


 자연의 낮과 밤, 그 리듬에 나를 맡기자. 이미 뒤틀리고 깨져 있던 리듬을 자연에 맞추어 나가기 위해 아침에 해가 뜨면 컨디션이 좋든, 안 좋든 옷을 차려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며 마치 광합성 하는 식물의 연약한 이파리처럼 피부 곳곳에 햇빛을 받아냈다. 한기와 상쾌함이 공존하는 아침 공기를 폐 깊숙이 느끼며 폐포 구석구석으로 보냈다. 아침 햇살에 표면이 살짝 뎁혀진 사각거리는 아침 흙을 두 발로 딛었다.


 인간은 자연의 순리에 순종해야 하는 자연의 극히 일부이며, 인간의 삶은 크나 큰 우주의 시간에 맞물려 흘러가는 톱니바퀴 중 하나이다. 나약하지만 결국 내 삶은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리라는 것을 믿고 의지했다. 거대한 자연에서 인간은 한없이 겸허해져야 하며, 자연의 시간에 내 리듬을 맞추었다. 그리고 비로소 잠이라는 자연의 선물을 다시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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