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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위해 요리한다

자취생의 소소한 요리 도전기

by mz교사 나른이

탁탁탁 야채와 고기가 썰어지는 도마의 강단 있는 리듬, 보글보글 냄비 속 국이 뽑아내는 구수한 멜로디. 매일 저녁, 우리 집 주방에서 삼삼한 리듬에 맞추어 단출한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연주자는 단 한 명, 관객도 단 한 명.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향해 나만을 위한 맛깔나는 정기 공연을 시작한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소소한 기대감으로 뎁혀져 뜨끈하다.


요 근래 '집밥 만들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무려 자취 4년 차가 되어서야, 뒤늦게. 자취 초반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취미였다. 요리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인 것만 같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자취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칼이 무서워서 사과를 깎지 못했다. 사과도 깎지 못하는 나에게 요리는 무모한 도전이자 높고 험준한 산이었다.


다행히도 문명의 발전은 부엌에도 넘치는 은혜를 흘러 보내주었고,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 같은 가전들은 요리 문외한들을 구원해 주었다.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고, 에어프라이기 버튼을 돌릴 줄만 알면 그럴싸한 요리들이 먹음직한 김을 내뿜으며 완성되는 세상이다. 나는 이 문명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 은혜의 혜택을 찬양하며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전자레인지로 온갖 간편하게 뎁혀 내거나 에어프라이기에 냉동식품을 투하해 타이머를 적절히 설정해 놓고 잠시 방치했다. 그렇다면 요리 완성. 탁자에 냉동식품을 덥힌 용기째로 꺼내 몸속에 쑤셔 넣었다.

혀에 맴도는 얕은 기름기를 음미했다. 미뢰를 감싸 마비시키는 자극적인 온갖 소스들이 혀를 타고 내려왔고, 목구멍에서 미끄러져 몸속으로 퍼져 나갔다. 어느새 내 입맛은 자극적인 가공식품의 맛에 길들여졌다. 냉동식품, 가공 식품의 섭취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마저 꿰뚫고 있는 자명한 것이었기에 이런 음식들을 먹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마음의 한 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죄책감과 찜찜함의 목소리를 구태여 무시했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 이거 하나 먹는다고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길 리 없어, 아직 건강하니까 이 정도는 거뜬해, 다른 사람들도 냉동식품 많이 먹는데 유난이다. 갖가지 조잡한 문장들을 이어 붙이며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자극적이며 편리한 맛에 대한 길들여짐과 직접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기 번거로움의 감정이 오물조물 잘 버무려진 채 흩뿌려진 변명들이었다.


냉동식품과 가공식품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어느 날,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히 요리 영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온갖 요리 프로그램과 요리 채널이 난자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요리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흔한 일상 중 하나였지만, 이 영상은 조금은 나에게 특별하게 전달되었다. 칼로 썰고, 볶고, 지지고, 끓이고, 데쳐 내는 복잡하고 화려한 요리 영상이 아니었다. 전자레인지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요리'라고 칭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요리의 프로세스는 짧고 간단했다. 오트밀과 계란을 잘 섞어 전자레인지로 조리하고, 소금과 참기름 같은 간단한 향신료들로 맛을 덧입히는 것이 요리의 전부였다. 아무리 요리 젬병이라도 날계란을 깨고, 오트밀을 숟가락으로 퍼 날라 마구 섞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누르는 것. 그리고 소금과 참기름을 살짝 얹어주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것 아닌가! 당시에 간단한 요리 재료마저 없었기에 재료를 모조리 새로 구매했다. 이렇게 간단히 요리가 된다고? 반신반의하며 요리 영상의 프로세스를 재연해 보았다. 세상에, 너무나도 맛있었다. 이렇게나 우연히 내 요리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요리 젬병의 초창기 요리들은 모조리 전자레인지로 이루어졌다. 전자레인지로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고, 전자레인지로 오트밀죽, 야매 국 요리를 만들곤 했다. 이미 단정하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진 각종 냉동 손질 야채들을 구매해서-다시금 강조하는 말이지만, 너무나도 편리해진 세상이다!- 대충 섞고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생각보다 먹음직한 음식이 완성되었다. '이걸 전자레인지로만 만들었다고?', '나도 요리를 했다고?' 같은 짧은 감탄을 매번 남발하며 서둘러 숟가락을 집어 들어 들곤 했다. 전자레인지로 가지 각색의 요리를 하는 동안 간장, 식초, 식용유, 된장 같은 기본적인 식재료들도 차곡차곡 마련되었다.


전자레인지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어느 정도 마스터하자,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험으로 켜켜이 퇴적된 자신감은 의욕을 확장시켰다. 전자레인지로 만드는 엉성한 요리들도 충분히 맛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더 다양한 식감과 향, 맛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기존에 하는 간단한 요리들보다 더 풍부한 요리들을 성긴 솜씨로 정성스레 선물하고 싶었다. 가스레인지로 불을 사용하는 요리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용기가 깊은 골의 정수로부터 스며 올라왔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떠올려보았고, 블로그를 뒤져 레시피를 찾았다. 클릭 한 번 만으로도 검색 브라우저 몇십 페이지를 채우는 정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심사숙고를 통해 그중에서도 가장 간단해 보이는 레시피를 고르고 골랐다. 요리해보고 싶은 음식 키워드 앞에 '초간단 레시피' 같은 소심하고 귀여운 단어들을 덧붙이기도 하며 가장 도전해 볼 법한 레시피를 골라서 보물을 금괴에 넣는 사람의 마음으로 각종의 레시피를 저장했다.


여전히 요리 초보이고,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대접할 만한 요리 실력을 겸비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식기에 음식을 최선을 다해 가지런히 담아놓고 나면 손수 만들어낸 온기를 품은 요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벅차오른다. -오히려 요리 고수라면 손끝에서 각양각색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상 속에서 당연시되는 하나의 과업에 불과할 것이다. 근사한 요리를 한 상 가득 내어놓고도 무덤덤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요리만으로 벅차오름과 감격은 요리를 갓 시작한 초보들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아직 음식의 비주얼까지 고려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예쁜 접시에라도 담아보자는 마음으로 나름 선별해 낸 아기자기 귀여운 접시에 음식을 가지런히 놓는다. 음식 사진을 이 각도, 저 각도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 본다. 하나의 작품이라도 만들어 낸 장인이 된 감정을 느낀다. 매일매일, 음식을 통해 작은 성취감과 효능감을 경험한다.


요리를 직접 하면 힘들지 않냐고 주변 친구들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때마다 간결하고 희미한 미소를 비추며 '재밌어.'라고 짧게 대답한다. '재밌어.'라는 짧둥한 한 마디를 길고 가는 실처럼 늘어뜨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문장에는 수없는 장점들이 함축되어 있다. 직접 먹을 요리를 하고 나서, 그리고 간단한 플레이팅으로 스스로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나서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것들이 달라졌다.


기본적으로는 신체적 건강이 달라졌다. 밖에서 원재료도, 재료에 버무려진 양념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매일 같이 먹었을 때엔 피부 트러블이 잦았고, 소화불량으로 배를 부여잡는 때도 잦았다. 스스로 섭취할 음식의 재료를 하나하나 선별하고, 요리해 먹는 지금이 신체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피부 트러블을 달고 살던 과거와 달리 피부 트러블이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올라오던 불청객 뾰루지도 올라오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가끔 과식해서 위가 가득 찬 느낌은 받지만, 소화기관이 뒤집어지는 듯한 소화불량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다. 이러한 두 가지 지표만으로도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 낸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유의미하다는 것을 자명이 깨닫는다.


작은 성취를 거의 매일 경험하며 행복의 총량이 커졌다. 자연의 모양새를 띤 채소들을 서툴게나마 다듬어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보고, 양념을 배합하여 군침 도는 소스를 배합해 낸다. 몇 가지 식재료를 적절히 조합해 내어 음식을 완성해 내는 일련의 단정한 과정들. 일상 속의 작은 소소함 속에 사소한 성취를 담아낸다. 대부분의 노력의 결과는 무정형의 것이기에 성과를 두 눈으로 직접 직시하는 경험은 너무나도 귀하다. 나를 위한 소소한 음식을 요리해 내고 담아내는 과정에서 성취와 은은한 행복이 피어오른다.


스스로를 더욱 아끼게 되었다. 이전에는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허술하게 덜어낸 음식을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곤 했다. 남에게 대접하는 음식도 아니고, 누가 봐주는 것도 아닌데 정갈하게 담아 먹어봐야 설거지할 식기만 늘어날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소소한 플레이팅을 완성해 낸다. 다른 누군가가 보지 않더라도, 내가 보니까. 소중한 내가 먹을 음식이니까. 나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테이블에 정갈하게 음식을 올려놓는다. 음식에 어울리는 디자인의 식기를 고르고, 음식을 단정하게 담아낸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식기에 어우러져 한 층 더 깊어진 것만 같다. 일종의 플라시보인지, 예쁜 접시에 담아낸 요리는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손님은 나 하나, 하지만 가장 소중한 손님. 스스로 대접하는 일련의 시간은 나는 정말로 소중하고 고로 대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건강이 걱정된다면, 스스로의 행복을 찾고 싶다면, 자꾸만 쌓아 올리려고 해도 자존감이 무너져 내려간다면, 스스로를 위한 요리를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더라도 충분하다. 전자레인지만으로 만들 수 있는 일명 '초간단 요리'를 만들어 내더라도. 결국은 소중한 나를 위한 대접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니까. 소박한 요리를 해냈다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예쁜 그릇에 덜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대접하며 자존감이 커져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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