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모도바르 역주행 시리즈 1: 깨어진 포옹이여
알모도바르의 뮤즈 페넬로페 크루즈(레나 역)는 여느 회사의 비서직을 맡고있다. 그녀의 부모가 등장하는데, 엄마는 레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위독하다는 말을 남긴다.
레나는 어느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돈 벌 곳을 소개받는다. 그 곳은 바로 자신의 직장상사를 상대하는 일이다. 레나는 그 일을 거절하려하지만, 그 중개업자는 바로 그 직장상사가 레나를 오래도록 찾고 기다렸다는 말을 전한다. 레나는 그 일을 받아들이기로하고, 병원에 상사와 함께 찾아가 병원비를 지불하며 아빠를 좋은 병실로 이동한다. 엄마는 레나의 상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둘이 함께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바로 이 장면에서 엄마의 의미심장한 눈빛은 알고있다. 딸에게 어떤 짐을 지웠는지. 엄마는 그저 필요한 걸 요청하면 딸이 알아서 해결해주면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알려고하지 않았다. 그런 요구가 딸을 어떻게 얽매이게 하는지...그리고 딸은 그렇게 엄마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자신의 영혼과 몸을 옭아매는 노예 계약을 성사시킨다. 알모도바르에 나오는 다양한 모성상 중의 하나이다. 자식을 통해 필요를 채우는 부모.
레나는 그녀의 상사 어니스토 (이제는 더 이상 상사가 아닌 동거인이라고 하자)와 함께 동거한다. 그녀는 그녀의 몸, 그녀의 인생의 댓가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리고 그녀의 꿈인 연기를 하고자 오디션을 보러간다. 그 곳에 마테오가 있다. 마테오는 영화감독으로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마테오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둘의 위험한 사랑이 시작된다.
어니스토는 집착이 강한 사람으로 묘사되며, 그의 아들은 레나의 영화찍는 모습을 무비메이킹 다큐를 찍는다는 미명아래 세트장에서의 그녀의 모든 모습을 촬영한다. 어니스토는 입술 모양으로 말 소리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을 고용해 그 다큐를 돌려보며 분석해서 마테오와 레나 둘의 대화를 읽어낸다. 그리고 둘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둘의 사이를 의심하면서 레나에게 쉼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데리고 주말 여행을 떠난다. 그 곳을 다녀와서 레나는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마테오에게 ‘그 짐승같은 자식이 나를 48시간 올라탔다.’ 고 울면서 호소한다. 영화제작에는 돈이 필요하고, 레나는 이 영화의 돈을 데고 있는 어니스토가 영화를 망쳐버릴까봐 걱정을 하며 그를 떠나지 못하였다. 집에 들어와 어니스토가 있는 곳의 문을 여는 순간 어니스토가 자기가 마테오와 대화하고 있는 영상을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드디어 레나는 어니스토를 떠날 결심을 한다. 짐을 모두 싸서 그를 떠난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대로 꼭두각시 인형이길 거부하는 순간 어니스토는 그녀에게 무자비하다. 그녀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 위에서 밀어버린다.
계댄 밑으로 굴러떨어진 레나. 결단을 한 듯 빨간 원피스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굳센 의지의 모습. 자신의 인생을 드디어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가기로 결심했던 그녀. 하지만 빨간색은 위태롭기만 하다. 그녀의 의지와 대조적으로 이내 계단 아래 굴러떨어져서 비참하게 망가진 몸뚱아리를 가누지 못한 채 고개를 들고 어니스토를 쳐다보는 그녀. 그녀의 눈엔 체념과 원망 무엇보다 고통이 가득하다. 그통에 몸부림치는 그녀에게 어니스토는 병원으로 데려다주겠다고한다. 그녀를 부축해서 병원에 데려간 어니스토. 그녀는 어니스토를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마테오의 영화를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한다. 그렇게 거래를 하지만, 마테오는 더 이상 레나가 그런 짐승같은 삶을 영위하게 놓아둘 수 없다. 둘은 그렇게 도주를 감행한다.
둘은 어니스토를 피해 무작정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 후 밀월여행을 떠난 그들은 도피처에서 신문을 읽고 마테오의 영화가 아무렇게나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영화비평가들에게 최악의 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더 이상 참지못하고 마테오는 자처지종을 파악하고자 그의 에이전트 주디트에게 전화를 걸고 거처를 남긴다.
그들이 드라이브를 하는 중 신호등에 걸려 여느 연인들과 같이 포옹하고 키스하는 중 사거리에서 돌진한 어느 차와 충돌하여 레나는 즉사하고 마테오는 눈이 멀어버린다.
영화는 마테오가 이 이야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끝내 아무렇게나 편집되어 혹평을 받았던 마테오 영화의 원본을 주디트가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마테오. 마테오는 또한 그 때 그의 거처를 어네스토에게 알렸던 이도 주디트였다는 사실을 듣게된다. 마테오의 생일에 매니저는 그의 아들과 함께 생일선물이라며 이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죄책감. 오랜 죄책감으로 수십년 동안 고통받은 그녀.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전, 마테오와 주디트는 한 때 연인사이였고 그녀의 아들은 사실 마테오의 아들이기도 했던 것. 매니저는 마테오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이 사실을 숨겨왔다. 이렇게 종국에 주디트는 말을 뱉어냄으로서 자신을 옥죄어왔던 죄책감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마테오는 수세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영화가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다시 한 번 부여받는다.
레나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어니스토와의 노예계약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녀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누가 그녀에게 씌운 굴레일까? 자신의 삶을 희생하도록 종용한 그녀의 엄마? 그녀 자신?
레나는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과 영혼을 담보로 거래한다. 그녀에게 가진 것은 자신의 몸 밖에 없기에...처음 아빠의 병원비를 데려고 자신의 몸을 어네스토에게 바쳤고, 이후에는 애인의 작품을 망치지 않아달라고 자신의 몸을 또 다시 어네스토에게 바친다. 한 번 자신을 포기했던 경험은 또 다시 그리고 매번 반복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걸 스스로 허용하게 만든다.
마테오도 어니스토와 노예계약을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쥐고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에게 빼앗긴 사랑. 애초부터 돈과 권력을 소유하지 않은 레나와 마테오의 포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것일까. 노예와 또 다른 노예의 사랑. 처음부터 그것은 깨어진 포옹이었음을...
어니스토 또한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집착하면서 집착의 그리고 애증의 노예로 전락하는 삶을 산다. 그의 노예생활도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알모도바르의 종전 영화에서처럼 정의가 이생에서 실현되지 않는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테오가 되찾게 될 명예로 인해 그리고 주디트가 벗어버린 죄책감으로 인해 조금의 희망을 남기고 끝을 맺는다.
우리의 자유를 지금 구속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무엇의 노예인가?
누군가의 정서적, 물질적 노예인가?
돈의 노예인가?
사랑의, 집착의 노예인가?
아니면 죄책감의 노예인가?
우리가 벗어나야할 것, 그것이 무엇인가?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