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그리움처럼

새글 김경진 연애기

by 새글

익숙한 그리움처럼


홀리듯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오는 길, 평상시 잘 입지 않는 슈트를 입다 보니 긴장감에 카라 깃이 접쳐있었나 보다. 등 뒤로 다가와 옷깃을 펴주는 그녀의 세심한 손길이 오래된 연인 같은 기분을 선물한다. 사람에게 마취되면 깨어나기가 어렵다. 깨어나고 싶어 지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해가 지고 있는 식당 앞 주차장에서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손을 흔들고 아쉬움을 삭여야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첫날의 몽롱한 기분을 그대로 품은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멀리에서 왔으니 한번 더 만나고 가겠다고 우기기를 잘했다. 뒤척이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어둠이 옅어질수록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함이 부질없어졌다. "느낌이 오는 대로 하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진심을 품은 마음이 전부가 아닌가." 약속한 식당에 시간이 되기도 전에 미리 가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며 긴축되어 있는 마음의 근육을 풀기 위해 손가락을 뚝, 뚝 꺾어야 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반찬을 앞으로 밀어주는 그녀의 사려 깊음에 나는 조금 더 조급해지고 있었다. 다음의 약속을 약속받아내야 했다. 폭염과 코로나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더위를 극도로 싫어해서 다행이었다. 어색한 장소에 앉아 나오지 않는 말들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 진땀을 흘리지 않게 되어서 좋았다. 그녀가 운전을 하는 차를 타고 무등산 둘레코스를 드라이브하는 행운은 나에게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때 경계심이 무너진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거리. 팔을 뻗으면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 몸의 거리가 마음의 거리를 줄여주게 되어 있다. 그녀를 향해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다가설 용기를 더해갈 수 있었다. 여행 이야기, 지나온 삶의 굴곡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날들에 대한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은 첫 만남의 낯섦을 밀어내고 호감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첫눈에 반했다"는 식상한 고백을 하고 나서 나는 보다 적극적일 수 있게 되었다. 빠른 고백에 담은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랐다. 아련하게 마음의 바닥에서 우러나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까지도 가득 채우는 감정처럼 그녀가 나에게 익숙한 그리움이 되기 시작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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