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마다 시

거미

이면우

by 새글

거미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니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을 안다

캄캄한 배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 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날시예감
이 시를 쓸 때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다. 이면우 시인은 보일러공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대전에서 함께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내가 쓴 시를 보아 주기도 하면서 부인과 함께 봄꽃을 꺾어 작은 방을 화사하게 꾸며놓고는 소박하게 웃던 그런 보일러공 시인이었다.


시를 언어로 쓰지 않고 마음으로 쓰는 가난한 시인에게 중식당에서 점심을 사준 기억이 난다.

'경진 씨, 나 이런 거 태어나서 첨 먹어보네.'

그냥 평범한 점심 코스요리였지만 시인은 첨 먹어본단다.

이 가난하고 마음 여린 시인이 거미줄 앞에서 거미의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철없을 때에는 그냥 거미줄을 걷어내 버릴 것이지만, 그 보다 좀 더 세상을 알게 되면 살짝 망에 걸린 잠자리나 때어내 날려주겠지만 이제 거미의 노고를 알 나이가 되어, 자신이 거미가 되었다는 것을 알므로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로 내려가 내 일 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면우형님! 지금은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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