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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Jun 15. 2021

달빛 외도

김선태

달빛 외도

김선태

   처음엔 사립문을 빼꼼 열고  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못내 수줍어서

 허리 휘도록 고갤 수그릴 뿐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새  밤마실을

 나다니기 시작했다 비 오고 구름 낀 날만 빼고는 외출이 잦았다  어느

 날 사내와 밀밭에서 만나 후부터 몸에  변화가 생겼다 날이 갈수록 배

 가 무장무장 불러왔다 드디어 만삭이  된  보름밤 그녀의 배꼽에서 눈

 부신 빛의 아이들이 쏟아져 내렸다 몸을 추스른  그녀는 환한 얼굴로

 아이들과 함께 밀밭으로 내려왔다  사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이며

 산이며 강물 위를 밤새도록 깔깔거리며  쏘다녔다  그러나 보름이 지

 나자 그녀의 외출은 차츰 시들해졌다  몸도  몰라보게 야위고 얼굴에

 핏기마저 가셨다 결국 시름시름 닳던 그녀는 그믐밤  사내와  헤어지

 더니 사립문을 캄캄하게 닫은 채 나타나지  않았다 밀밭에 가면 아직

 도 보름달을 기다리는 사내가 있다 



날시예감

시를 읽다 보면 의뭉한 의인화의 달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달은 점점 몸을 불리며 만삭이 되고 빛의 아이들을 쏟아놓고는 시름시름 몸을 줄이다 사라져 버린다. 달의 일주기, 한 달 동안의 변화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묘사해 놓은 시다. 김선태 교수는 송종찬과 형 동생 하는 막역한 사이다. 그 사이에 내가 끼여 몇 번의 여행과 몇 번의 술자리를 했더랬다. 강진이 고향인 김선태 교수를 따라 마량포구 방파제에서 낚시를 한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쥐포에 소주를 질겅질겅 씹었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이 되어 아직도 아련한 기억 속에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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