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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Jun 15. 2021

신경림

눈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 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야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서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는다 해도...


날시예감

세상을 끝내는 날에야 그동안 꿈꿔왔던 것들이 되어 보고 싶답니다.

잎이 되고, 꽃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새가 되고, 별자리까지 올라갔다 하얀 은가루로 흩날리고 싶답니다.

하찮은 눈물자국으로 남아도, 완전히 잊혀져도 후회하지 않을 거랍니다.

그만큼 회한 없이 살아왔을 겁니다.

세상에 남겨둘 미련 따위는 없을 겁니다.

갈 때는 이렇게 훌훌 털어내고 가고 싶습니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오릅니다.

일맥이 상통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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