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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날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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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Jun 19. 2021

농무

신경림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날시예감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우리의 뿌리였던 농촌이 무너지고

농촌은 소외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농민들의 한 서린 신세를 농무를 통해서 시인은 넋두리처럼 늘어놓는다.

어디 한 군데, 시어 하나하나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낭만이나 희망은 없다.

한과 울분과 체념으로 점철되어 가는 농군들의 애잔한 삶이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어떤 이는 울화가 도져 울부짖고 어떤 이는 허탈함에 해해대거나 아님

현실에 타협한다.

한 다리 들고 날라리를 불어도, 어깨를 흔들어도 고달픈 삶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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