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조지훈

by 새글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랑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살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날시예감

곱고 고운 시, 조지훈 님의 사모다.

사랑이라는 것을 할 때는 누구나 이렇게 다해서 사랑을 하게 되리라.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잃어져 버렸다면 그리하여 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야 한다고 해도

미워지도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라니.

그대여, 아직도 사랑하고 있거든 남기지 말고 다해서 다해지도록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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