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마다 시

사랑 그대로의 사랑

도종환

by 새글

사랑 그대로의 사랑

도종환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떠야 하는 피곤한 마음속에도

나른함 속에 파묻힌 채 허덕이는 앳된 심장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담겨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 속에도

십 년이 훨씬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눈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겠죠

비록 그날이 우리가 이마를 맞댄 채 입맞춤을 나눈 아름다운 날이 아닌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잊혀져가게 될 각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슬픈 날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날시예감

사랑이란 그런 거다.

당신이 비록 나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모르더라도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된 사랑은 결코 변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지 못하면 어떤가.

항상 그대로인 사랑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더라도

한 번에 다 준 마음이 어떻게 변하겠는가.

우리가 간직한 그리고 진행 중인 모든 사랑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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