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뻔하다
“읽다 보니 내용이 뻔한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꽤나 있다. 뻔할 수밖에 없는 변명을 해보고 싶다. 뻔해야 읽기에 편하다. 간혹 예측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좋기도 하지만 기대하는 결말에 이르러야 만족감이 들게 되어있다. 글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대리만족이다. 특히 에세이나 시에서 논리를 찾고 인과를 따지는 것은 맞지 않는 읽기의 습관이다. 논리는 철학에서 찾는 것이 맞다. 인과는 소설에서 따지면 된다. 감정적 안정감 혹은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에세이와 시는 존재하는 것이다. 뻔하지 않으려면 복잡해진다. 복잡해지면 난해해지고 공감력을 극대화시킬 수가 없어진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뻔한 내용이 뻔한 결말에 이르는 것이 좋다. 다만, 뻔한 표현이 되지 않도록 단어를 선택하여 배열하고 적절한 수사와 서사적 구조가 어우러지게 해야 좋은 글이다. 이해하는 데 머리를 써서 해석하는 글이 아니어야 한다. 쉽게 읽히고 읽자마자 뭉클해지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현학적이 아닐수록, 평범한 소재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버무려질수록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쓰는 에세이시는 뻔하다. 누구나 뻔하게 읽고 뻔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추구한다. 뻔해야 편하다. 뻔뻔하게 나는 뻔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에세이와 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둘을 하나의 장르로 합했다. 그래서 명칭도 ‘에세이시’라고 붙이고 새로운 장르의 시작이라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시에 서사적 구조를 삽입하고 에세이에 시적 형식을 결합해 시와 에세이의 경계선에 올려놓았다. 곧 주류의 문학 장르가 될 것이라 뻔뻔하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