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
기다리기 좋은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매번 배신을 하듯 찔금거리며 오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변죽만 울리다 오늘은 드디어 비 같다고 느낄 수 있도록 오고 있다. 매화 마중을 가면서도 개나리, 목련이 만개해 버린 도심을 걷다가도 가뭄이 봄꽃의 생기마저 줄이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마침내 벚꽃이 개화를 시작하자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반갑고 고맙다. 지겹게 반복되는 건조주의보와 미세먼지가 봄의 전령처럼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날들을 묵묵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불쌍한 일이다. 폐 속에 들어찬 잡것들이 헛기침을 해대게 할 때마다 가슴근육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없던 병까지 걸리게 만들 가뭄의 날은 고역이었다.
비가 온다. 마른 먼지를 가라앉히는 봄비가 온다. 개화를 시작하는 봄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약비가 온다. 가슴에 품어야 했던 잡티를 씻어낼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비가 온다. 그래서 봄은 기다림에 보답을 해주는 맛이 있어 쌉쌀하고 달고 맛있다.
바닥을 드러낸 댐들이 물을 품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내리는 연약한 기세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겠다. 좀 더 거세고 거친 장대비가 오기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 단비만으로는 충족시켜주지 못할 정도로 대지가 말라 있다. 하루나 이틀 내리는 비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가뭄이 길었다. 제한급수에 임박한 댐들의 수위만큼 내리고 있는 비를 바라보는 기대치도 낮아져 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바닥을 적시며 물웅덩이를 만드는 비를 바라보는 기분은 상쾌하다. 벚꽃이 만개하고 꽃잎이 흩날리기 전에 반드시 꽃비가 내릴 것이라 믿는다. 습기를 품은 바람이 새싹을 틔우고 있는 나뭇가지에 머물러 생명력을 북돋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기다림은 외면받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는 없을지라도,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없을지라도 기다림이 있다면 기다리기 좋은 날이다. 삶에 기운을 불어넣고 싶다면 무엇이라도 가슴팍을 열어놓고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