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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대왕 Apr 16. 2020

빗창

[서평]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제주 4∙3

Beginning to End

(좌) 앞표지 (우) 뒤표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하고 김홍모 작가가 그린 빗창이 창비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만화로 보는'이란 문구가 달려 있어 가볍게 잡았지만, 관자놀이에 힘줄이 빡빡하게 들어간 채로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김홍모의 빗창(제주 4∙3) 이외에 윤태호의 사일구(4∙19 혁명), 마용신의 아무리얘기해도(5∙18 민주화운동), 유승하 1987그날(6∙10 민주항쟁)이 시리즈로 기획되었다. 전부 다 봐야 한다. '빗창'은 해녀들이 전복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일컫는다.



● 목차 Contents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던 그림체가 이야기와 맞물려 읽는 사람의 심장을 빨아들인다. 마지막에 있는 작품 해설제주 4∙3 희생자 분포 지도도 꼭 보길 바란다. 제주도가 다르게 보인다. 그간 많이 가 본 제주인데, 다음에 갈 때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꼭 방문하려고 한다. 그래야 음식물을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으로 Into the Book

(좌) 1번 (우) 2번

1번. 한국적 정서가 푹 녹아들어 간 그림체를 멍하니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날카로운 선들로 이루어진 이 시대의 웹툰에서 벗어나니 나의 정체성도 돌아온 것 같았다. 


2번. 말풍선 안에는 제주도의 실제 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의미 전달이 어려워 보이는 옛 지명과 사투리는 주석 처리가 되어 이해를 도왔다. 모방성이 세니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내뱉고 싶어 진다. 감칠 나게 소리 내어 읽어도 좋겠다.


(좌) 3번 (우) 4번

3번. 오일장 거리를 멋지게 그려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련화'다. 1932년이라. 아득한 과거이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항쟁이다.


4번. 초반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반전 이야기와 그림이 주먹을 불끈불끈 쥐게 할 것이다. 만화책이라고 휙휙 넘기지 말고 그림 하나하나를 독립형 작품이라고 감상하면 좋다. 왜놈들의 찌그러진 얼굴을 보라.



(좌) 5번 (우) 6번

5번. 그림은 크게 Landscape(풍경, 가로가 긴 그림)와 Portrait(초상, 세로가 긴 그림)가 있는데, 작가는 각각의 그림을 이야기에 맞추어 잘 표현했다. Portrait로 그린 해녀와 일본군의 싸움 장면은 긴박함과 아찔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6번.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총격과 총살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 장면 묘사를 두고 작가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총알이 발사될 때 총은 보이지 않는다. 총알이 나오는 총이 보일 리 없다. 소리와 피만 있을 뿐이다.


(좌) 7번 (우) 8번

7번. Portrait 기법으로 양쪽 페이지를 모두 사용하여 해녀들의 희망과 꿈을 묘사했다. 바다색과 하늘색은 둘 다 푸른색인데, 바다는 보랏빛으로 표현했다. 파란색에 붉은색이 들어가면 보라색이 된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바다에 내던져졌다고 들었다. 제주도에 계신 어떤 할머니는 절대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먹먹하다.


8번. 일제시대를 거쳐 미군정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빌붙었던 친일파. 친일 청산이 가능할까? 눈꺼풀 없는 친일파의 조심성을 온 국민이 더 크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파헤쳐야 한다. 


(좌) 9번 (우) 10번

9번. 미군정의 총알이 제주도민들의 살을 짓이겨 뚫고 간다.

10번. 제주도민의 피가 꽃잎처럼 튀어 오른다. 바다는 보랏빛이고 제주도의 꽃은 피를 먹고 자랐다.



 다시, 역사 Remember the blood

어떻게 역사를 잊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역사를 좀 더 잘 알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을 지나 정신없는 청년기가 되었을 때 생활에는 역사가 없고 실사만 있게 된다. 역사는 부러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핑계와 역사 인식을 바꾸기 전에 책을 통해서, 영상을 통해서,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역사는 반복 학습이 되어야 한다. 잊어서 무감각해져서 이 모양이 되었는데, 국가 전체가 역사 치매에 걸려서는 안 될 것이다. 활자가 싫다면 그림을 보자.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자. 역사는 애들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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