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소리

#50

by 김경옥

어김없이 다가오는 겨울에 눈은 꼬옥 내려옵니다.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지금, 마음이 그리움에 설레고 기다림에 조급해집니다. 다양한 소리를 내는 비와는 다르게 소리 없이 내리는 하얀 눈의 소리는 어디에 담아야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떤 그릇에 담아야 떨어지는 소리가 날까요? 어떤 음일지 뽀드득뽀드득 밟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일까요?


고등학교 시절 오후 수업시간에 창문 너머 생각지도 않았던 첫눈이 내렸습니다. 어떤 과목인지는 생각나지 않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모두 합심하여 “첫눈 와요~ 공부 그만해요~ 그만해요~ 그만해요~” 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댄스 가수들처럼 흥겹게 흔들며 춤추며 노래하듯 했습니다.


그렇군요. 눈은 청소년들 마음에 떨어져야 경쾌한 높은 음의 소리가 나는군요. 대문 앞 골목길에 모여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단결의 소리가 나겠죠. 눈싸움하는 친구들, 연인들이 하얗게 뒤집어쓰고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며 눈을 던지면 사랑의 소리가 나겠죠. 바쁘게 뛰어다니는 신바람 난 강아지의 꼬리 흔드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눈 내리는 날이면 깨어나기 싫은 꿈속같이 마냥 좋습니다. 기다림이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눈 아프게 쳐다보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길게 심호흡합니다. 눈의 냄새를 먹습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눈 오는 날 육교를 오르내릴 때면 엄청난 두려움에 빠져듭니다.

“우리 나이에 넘어지면 끝이야. 뚝 부러지면 어떡할래? 자식들은 모두 바쁜데….”


귓가에 눈 내리는 소리가 이 세상 낮은 ‘음’ 중에 가장 낮은 ‘음’ 소리같이 들립니다. 긴 겨울잠을 자려고 땅 속으로 잔잔히 스며드는 모든 자연의 소리, 영혼이 떠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도 자연의 소리가 되겠죠?

발자국을 돌아보며 또 돌아보며 걸어온 길을 봅니다. 마음이 싸-해집니다. 하얀 것은, 깨끗함은 소리 없이 오나 봅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도 남몰래 사랑하는 것도 소리가 없기에 더 고귀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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