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난감

#58

by 김경옥

유난히 동그란 눈동자의 빨간 금붕어 세 마리를 손에 들었습니다. 길이가 4센티미터 조금 못 되고 몸통이 비닐과 더불어 빨간색이고 눈, 꼬리, 지느러미만 까만색입니다. 몇 년을 나하고 그냥 쳐다보며 지냈습니다. 16회 개인전에 금붕어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하고 어항을 만들었는데 지름은 10센티미터쯤 되고 테두리는 여인들 머리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짙은 바다색을 칠했습니다. 투명 폴리로 만들었으니 시원한 물을 넣고 금붕어를 넣으니 바다색과 더불어 여간 예쁘지가 않았습니다. 나무로 빨간색의 의자를 만들고 어항을 올려놓았더니 심심한 듯해서 대지인 여인상을 만들어 둘이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어항 앞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전시 오픈 다음 날 화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금붕어 없어졌어요. 열심히 지켰는데….”

여직원이 울먹입니다.

“괜찮아요. 또 있어요.”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두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관람객들의 무지한 사랑에 두 마리의 금붕어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면 정말이지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나와 동고동락하는데 거실에 있는 어항의 겉과 속을 깨끗이 닦아주고 차가운 물 넣어주고 금붕어도 목욕시켜 주었습니다. ‘밤새 재밌게 놀아라’ 하면서 자그마한 초록색의 가로등을 가까이 놓아주었습니다. 금붕어는 물속 이야기에, 가로등은 늦은 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밤을 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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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무방>에서는 보이는 것은 쌓인 눈과 매서운 바람뿐인 두메산골에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여인이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를 내걸며 위태롭게 살아갑니다. 때에 따라 이 깃발, 저 깃발 꽂으며 그 가난한 삶을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여인의 신념(?)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전시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작아지고 비참해진 나를 발견합니다. 그때마다 내 안의 변명은 몇십 년이 지나도 똑같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난 가정주부야. 그러니깐 프로같이 할 수 없지. 작품? 괜찮아. 그냥 취미일 뿐이니까.”

스스로를 달래며 위로합니다. 식구들 잘 먹이고 적금도 여러 개 붓고 여러 차례 아파트를 사고팔고 월급생활 하는 남편 내조도 잘하는 친구들, 차지게 살림 잘하는 친구들의 얼굴과 말씨에는 자신감이 넘쳐납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그 표정을 보며 속으로 속삭입니다.

“난 작가야. 시간이 없어. 작품 생각에 다른 생각할 수가 없어. 작품, 작품 생각만 하자.”

또 스스로를 달래며 위로합니다. 사는 동안 엉거주춤 깃발 하나 자신 있게 하늘 높이 휘두르지 못한 것입니다.

안개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바닷가, 우뚝하니 서 있는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만인지, 옛날 자주 듣던 노래 ‘자니 기타’가 흐릅니다. 둘러보니 앤티크 스피커에서 흘러나옵니다. 나의 눈은 아련한 과거 속을 헤매며 짙은 회색의 안개에 한 편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기차를 보고 있습니다. 황금색, 은회색의 작은 기차들, 검은색의 화물칸만 이어진 기차 창문으로 희미하게 기관사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나 도착해요’ 하는 기적 소리도 들립니다. 노란 바퀴가 달린 머리와 꽁지는 파랗고 나머지 칸들은 녹색, 주황색, 분홍색의 기차 칸 속에는 동물들이 탔습니다. 호랑이, 코끼리, 기린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요. 살던 곳을 떠나 어디로 갈까요. 시설 좋은 동물원에 가서 어린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즐겁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고드름으로 굵고 길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듯한 추운 기차도 보입니다. 눈이 아름다운 매력적인 얼굴의 여인도 기적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 속에서 보이다 말다 합니다. 검은 기차의 선로처럼 평행선일 수밖에 없는 곳에 자신을 내려놓아버린 안나 카레리나입니다. 사랑? 사랑을 꽉 움켜쥐니 남은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분홍색의 기차는 옛날 귀족들의 마차 모양입니다. 분홍색의 슈즈가 춤을 춥니다. 밤이고 낮이고 마법에 걸린 양, 그 죽음 같은 열정으로 달려오는 기차에 춤을 추듯 뛰어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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