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가 뜨거웠다

3-3 첫 번째가 되어버린

by 오구TREE

이토록 아름다운 생명체는 처음이다.

누가 신생아를 쭈글쭈글한 외계인이라 했던가.

내 눈에는 너무 예쁘기만 하다.

“당신은 불한계곡에서 두 번째로 예쁜 여자였는데,

그런 당신이 내 첫사랑을 낳아줬어요.

천사가 따로 없네.”


매일 봐도 매 순간 지겹지가 않다.

“운전할 때는 웬만하면 저한테 줘요. 애 안고 운전하면 위험해.”

“좋은 걸 어떡하나 이 사람아. 이렇게 예쁘게 낳지를 말든가. 하하하하.”

순애와 지원이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아이구, 형님. 진짜 감사합니더.

유모차 태우긴 해야되는데 형편이 어려워가지고 못사고 있었다 아입니꺼.”

“아니 준호랑 준철이랑 너거 같이 일하고 있잖아. 근데 아 유모차 하나 못사나?”

“요새 히야 공장이 쪼매 사정이 안좋습니더. 그래 가지고 직원들 월급 겨우주고 지랑 히야는 그냥 남는거 쪼매씩 나눕니더.”

“하… 준호 니도 얼라 인제 태어났는데 고생이 많다. 부담 갖지 말고 필요한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래이.”

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란 철순이 형은 말수는 적어도 도움을 많이 주었다. 지원이가 클 수록 필요한 게 많아졌다.

미안하게도 아내마저 집에서 우산을 꿰매고 밤을 까고 있다.

“엄마, 혹시 지원이 한 1-2년만 집에 맡겨도 돼? 내가 공장에 취직을 했어.”

아내는 결국 장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지원이 이제 겨우 세살이야. 엄마랑 떨어져 있기 힘들텐데 괜찮겠니?”

“괜찮아. 거긴 할머니가 계속 집에 있고,

이모들도 많고… 돌봐줄 사람 없는 대구집 보다 나을거야.”

사실이 그러했다.


나와 아내가 모두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원이를 처가댁에 보냈다.

언제 데려올 수 있을지 기약도 못한 채.

“엄마, 엄마아! 아아아아앙!!! 언제 와? 몇 밤 자면 와?”

“지원아, 엄마는 백 밤 자면 지원이 데리러 갈게. 이모들이랑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빱빠도 잘 먹고 그래야해. 알았지? 지원이가 떼쓰면 엄마가 갈 수 없어. 꼭 예쁘게 잘 있어. 엄마 백 밤 자면 갈게.“

아이와 아내는 매일 밤 같은 내용의 통화를 주고 받는다.


“야, 임마! 김준호! 비겁하게 애를 처가에 맡긴다꼬? 니 첫사랑이라고 맨날 안고 다니던기? 하.. 안되겠네.. 함 들어봐리. 내가 진짜 친한 형이 내한테만 알려준 건데…”

그렇게 봉수와 나의 돈벌이 인연이 끝없이 펼쳐졌다.

잘못이든 불법이든 상관없었다.

덕분에 지원이가 다섯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


”고맙다. 봉수야, 진짜 고맙다. 니 덕분에 내가 돈도 벌고 우리 딸도 데리고 왔는데… 니는 내 대신에 깜빵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진짜 미안하고 고맙다. 내가 자주 찾아올게.“


봉수는 귀가 미어터지도록 사이렌이 울리던 그 날,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내 대신 스스로 경찰서로 가 주었다.

“야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더. 다 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예. 내만 잡아가면 됩니더. 그라모 이거 다 망하고 야도 할 거 없고 갈 데 없심더.“


속상한 날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다.

여전히 내가 위로를 받는 유일한 곳.


“아~! 첫끗발이 개끗발. 이 놈의 패는 와이래 안 맞노!“

봉수가 없이도 이제는 하우스에 간다.

”오빠! 집에 안 가? 아무리 여기가 하우스여도 그렇지. 집보다 여기에 더 오래있으면 어떡해! 와이프가 뭐라고 안해?“

”그러게.. 근데 와이프가 날 찾질 않아. 이게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한테 관심이 없나 싶기도 하고.. 그냥 여기 있는게 편하다. 쪼매만 더 있다가 갈게.”


집에 들어오니 와이프가 지원이를 데리고 자고 있었다.

이것도 인간이라고 배는 고파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하얀게 있길래 접시인가 다가갔다.

하지만 그것은 네모 반듯한 것이었고,

‘여보, 우리 이혼해요.’

간결한 글자만 덩그러니 있었다.

두 번째로 예뻤던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두번째이지만 첫번째인 여자와 작은 첫사랑.

이들을 지키려다 결국 첫번째가 되어버린 이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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