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가 뜨거웠다

4-1 방구석 랩소디

by 오구TREE

“가자 가자! 올라가야지! 그렇지, 그렇지! 슈-웃! 하아아….

다 된 거를 못 넣어가지고는“

벌컥벌컥 1리터 생수를 통째 마시고 있다.

월드컵, 게다가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니.

그래서인지 가게에는 파리가 풀풀 날린다.


“어, 철순이 히야 왔나? 웬일이고 연락도 없이.”

“니 임마 남들은 월드컵이다 뭐다 전부다 식구들하고 앉아서 치킨 먹고 응원 나가는데 혼자 낚시방에 처박혀 있을게 뻔해서 내가 왔다 아이가. 내 밖에 없제?”

“크으. 역시 히야 밖에 없네.”

“축구도 지 혼자 재방송이나 보고 앉았고, 하이고… 니도 참.”

나와 철순이 형은 이제 둘도 없는 친구다.

봉수가 잡혀가고 내게 남은 돈과 철순이 형의 도움으로 작은 낚시용품점을 차렸다.


“니 근데 집에는 안들어가나? 이 좁아터진데서 먹고 자고 다 하잖아 지금.”

“인자 지원이도 내 싫어하는거 같고, 집에 갈 낯이 있나 내가.”

“…. 그래. 나는 갈게. 볼일 보러 가는 길에 잠깐 들른거라.”

“어, 히야. 잘가리.”

한참을 고민했다. 훌쩍 커버린 지원이는 나를 반겨줄까. 아직 어린 지후가 내 얼굴을 잊지는 않았을까.


따르릉.

“어- 지원아. 아빠야! 지금 학교 마쳤지? 아빠가 데리러 갈까? 우리 둘이 갈 데가 있어. 아빠랑 데이트 할래?”

“……. 어디 가는데?”

“비밀이야. 엄청난 곳에 갈거야.”

“빨리 와야해. 혼자 기다리는거 싫어.”

“알았어, 알았어. 우리 지원이 데리러 가는 건데 금방 가야지. 조금만 기다려!”


“지원아. 눈 감아봐.”

질끈.

“짜안! 아빠가 선물도 준비했어. 어때? 지금 입어보자.”

아이와 함께 대구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를 보려고 했다.

“지원아. 월드컵은 전 세계적인 행사야. 아주아주 유명해. 우리 지원이가 살면서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또 열릴까 해서 같이 오고 싶었어.”

“아빠, 그럼 지후는? 지후도 축구 좋아하는데. 지후는 아빠가 나만 좋아한다고 맨날 운단 말이야.”

“지후 걱정은 하지마. 아빠가 다음에는 지후랑 단 둘이서 데이트 할거야. 그래도 되지? 허락해 줄거지?”

“당연하지. 아빠가 지후랑 놀아줬으면 좋겠어. 집에도 왔으면 좋…”

“자- 이제 옷 갈아입고 한 번 경기장에 들어가 볼까?”

지원이가 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 왜 이렇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일까.


“지원아, 오늘 어땠어? 재밌었지? 이경규 아저씨도 실제로 봤잖아~”

"아빠 거짓말 하는거 아니지? 다음에 지후도 데리고 올거지?"

"그럼 그럼 당연하지. 아빠가 지원이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

"다음에는 지후랑 나랑 아빠랑 셋이 와. 내가 엄마를 바라는 건 아니잖아."

이 아이는 너무 훌쩍 커버렸다.

"그래. 다음에는 꼭 지후랑 셋이서 데이트하자.

아니다. 말나온 김에 밥은 지후랑 할머니랑 다 같이 먹자.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우리 지원이?"

"음... 나는 피자 먹을래!"

"그래. 할머니도 피자 좋아하시니까 다 같이 먹으러 가자."


"어무이요. 마이 잡수이소. 애들 둘이 키운다꼬 고생하시는데 내가 좋은 거는 못해드리고 미안합니더."

"야야. 다 됐고. 니 언제 낚시방에서 나올끼고? 언제 집으로 오냔 말이다.

느그 아부지 사진관에서 연탄가스 마시고 뒤졌는데 그걸 까묵었나!"

"어무이. 애들한테 안 부끄럽고 싶습니더. 용돈도 제대로 못주고 생일선물 하나 번듯한거 못하는데

우예 집에서 애들하고 맨날 얼굴보고 삽니꺼. 염치도 없구로."

"상등신아아- 돈 좀 없어도 선물 쩨매난거 해줘도 니는 아빠아이가.

엄마도 없이 내만보고 있는데 불쌍치도 않나. 막말로 인자는 도박도 끊고 약도 안파는데

그기 진짜 당당하고 염치 있는거지. 생각이 있나, 없나."

“아따, 애들 다 듣는데서 고마 하이소. 밥이나 잡사!”


든든히 배를 불리고 침대에 누웠다. 철순이 형은 맨날 판자때기라고 잔소리하지만.

모양이 침대고 사람이 누울 수 있으면 침대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한가.

임대료가 싼 가게를 고르느라 북향인 이 곳을 택했다.

내 겨울은 남들보다 두 배는 추웠다.

그래도 이제는 완전한 봄이 되었으니 석유난로는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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