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땅, 땅땅땅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아침 해도 채 뜨기 전인데 지우의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지우의 자취방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늦은 밤에는 옆 방에서 유튜브로 뭘 보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아침 알람으로 옆 방에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강박에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이 지우는 벌떡 일어나 알람부터 껐다.
"잔 것 같지도 않네"
방금 잠 든 것 같았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 되어버린 허무함에 밍기적대던 지우는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샤워를 시작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가스비를 아끼겠다며 보일러도 켜지 않는 지우는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가 출근 준비를 하는 시간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몸을 녹이고 싶어서 평소보다 샤워를 좀 더 오래한 지우는 서둘러 머리를 말리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아휴, 하기 싫어"
지우는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짤이 되어버린 명대사를 나지막히 읊조리며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일을 시작한지 5년이 된 지우는 조직개편으로 만난 지랄 맞은 상사 때문에 최근 하루하루가 몹시 피폐해졌다. 그런 생활 속에서 낙이라면 굉장한 공백기를 거쳐 컴백한 최애 가수의 신규 앨범이었다.
"아이씨, 이어폰 놓고 왔다."
출근길 유일하게 위로가 되어주던 최애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지우는 되돌아가서 이어폰을 챙겨올까 했지만 그러면 지각은 빼박이었고, 최애의 노래 대신 상사의 지랄을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우는 플랜 B로 그동안 미뤄뒀던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또각
시끌벅적한 출근 시간의 지하철을 기다리며 웹툰을 보던 지우는 유독 크게 들리는 구두 소리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모두가 피곤한 아침 출근길에 이렇게 큰 소리의 구두 소리를 내며 걷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이내 들어오는 지하철과 몰려드는 사람 때문에 지우는 금새 소리를 잊고 지하철 속으로 파도에 지워지는 모래마냥 인파에 휩쓸렸다.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땅, 땅땅땅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어제 야근을 마치고 밤 열두시가 되어서 집에 들어온 지우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가 일어났다. 어둑어둑한 천장을 보며 온갖 욕이 나왔지만 머리와 달리 몸은 성실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친 지우는 오늘은 까먹지 않겠다며 이어폰을 먼저 챙겼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틀었는데 핸드폰에서 소리가 흘러 나왔다. 황급히 음악을 끈 지우는 이어폰의 상태를 확인했다. 배터리가 없었다. 상쾌한 하루를 기대했던 지우의 하루는 이미 망가지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꽉 문 지우는 이어폰을 빼고 다시 또 지하철 역 앞에 섰다.
또각 또각 또각
오늘도 또렷하게 들리는 구두소리에 지우는 눈이 커졌다. 오늘은 이 구두소리의 주인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어제보다 더 격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지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끌려갔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소리가 가까워질 무렵, 은은하면서도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우는 이 향수냄새가 구두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따르르르르릉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알람이 울렸다. 어쩔 수 없이 지우는 가까운 곳의 탑승구의 줄을 섰다. 사람이 더 없었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심 아쉬웠다. 어느새 지우는 구두소리에 꽂혀 이어폰의 배터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려던 순간.
또각 또각 또각
바로 앞에서 명확하게 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이다" 지우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길고 단정한 코트에 깔끔하게 묶은 머리, 검은색 구두를 신은 여자였다. 높은 굽 때문에 지우와 비슷한 키의 그녀는 모두가 지친 몸으로 구부정한 인파 속에서 유일하게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멋있다"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 깜짝 놀라 입을 막고 지하철을 탔다. 인파에 밀린 지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서게 되었다. 지우는 자신이 꿈꿔왔던 '화이트칼라'의 모습의 여자 버전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어떤 이성적인 감정보다 자신이 꿈꾸던 동경의 대상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구두소리가 그렇게 명확하게 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옆에 선 여자의 구두를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꼼짝도 못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지우는 그녀의 구두를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땅, 땅땅땅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지우는 재빠르게 씻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이어폰의 배터리도 충분했지만 지우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동안 이어폰을 꼽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그녀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어제 섰던 탑승구 앞에서 웹툰을 보며 서 있었다. 웹툰을 보고 있긴 했지만 신경은 온통 귀로 가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왔다. 어제 기억한 그 향수 냄새와 함께 그녀가 지우의 뒤에 섰다. 지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회색이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녀는 확실히 혼자 밝게 빛났다. 지우는 왠지 모르게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기운 없던 출근길에 자세를 고쳐먹었다. 지랄 맞던 상사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업무에 집중했다. 흔들릴 때면 구두소리와 향기를 생각하며 또렷한 자세로 업무에 임했다.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땅, 땅땅땅 따라당 땅땅 땅땅땅 땅-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지우는 재빠르게 씻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이어폰의 배터리도 충분했지만 지우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동안 이어폰을 꼽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그녀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어제 섰던 탑승구 앞에서 웹툰을 보며 서 있었다. 웹툰을 보고 있긴 했지만 신경은 온통 귀로 가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왔다. 어제 기억한 그 향수 냄새와 함께 그녀가 지우의 뒤에 섰다. 지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회색이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녀는 확실히 혼자 밝게 빛났다. 지우는 왠지 모르게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기운 없던 출근길에 자세를 고쳐먹었다. 지랄 맞던 상사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업무에 집중했다. 흔들릴 때면 구두소리와 향기를 생각하며 또렷한 자세로 업무에 임했다.
누군지는 전혀 모르고 또렷한 구두소리와 은은하면서도 짙은 향수냄새만 남은 그녀가 지우를 바꾸기 시작했다.
따라당 -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지우는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빠르게 출근 준비를 마친 지우는 잠시 앉아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렸다. 머리 속으로 상상할 때마다 구두소리가 맴돌았다. 시간을 보고 출근길을 나선 지우는 이제 이어폰을 꼽지 않는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지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무관심했던 회색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빛이 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지우는 나지막히 읊조리며 지하철 탑승구 앞에 섰다. 오늘도 구두소리가 들린다면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이성적인 호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태도를 바꿔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뭐라고 말을 걸까 고민을 하던 찰나 오늘도 또렷하게 그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고개를 돌아보니 그녀가 뒤에 서 있었다. 그동안 내적 친밀감이 쌓인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할 뻔했지만 꾹 참고 다시 앞을 돌아봤다. 여전히 출근길 인파 속에 파도처럼 휩쓸려 지하철에 탔지만 지우는 이제 짜증이 나지 않는다. 비록 그녀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느슨하고 우울하고 지루했던 일상이 변해가고 있음에 힘이 솟았다.
끼기기기긱
갑자기 지하철이 흔들렸다. 지우는 앞에서 크게 휘청이는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였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였다. 지우는 화들짝 놀라 얼버무리며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지우였지만 짧은 시간 변화한 자신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인파 속에서 마주본 둘의 모습만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