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 나만 자기 싫어요?
자기 싫어
일요일 밤 내가 앓는 병은 월요병도, 일하기 싫어병도 아닌 '자기 싫어병'이다. 휴일이면 휴일이라서, 평일이면 평일이라서 자기가 싫다. 분명 졸린데도 무료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잠에 들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늦게 잘수록 '내일의 나'가 후폭풍을 맞게 될 텐데 그건 안중에 없다. 오늘만 사는 내가 내일을 맞을 준비가 안 되었는데 후폭풍에 관심이 있을 리가.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과연 몇 시에 잠들까.
왜 자기 싫어?
신생아들은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가 없어서 잠투정을 한다고도 들었다. 나는 잠들고 깼을 때 내일이 온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싫다. 오늘을 놓아주고 나면 만나게 될 내일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말이다.
어른들은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잠을 거부한다고 어디서 들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한 날에는 놀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잠들기가 싫고, 열심히 논 날에는 더 놀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잠들기 싫다. 일도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 한 날에는 이도 저도 못 했다는 후회에 더더욱 잠들기 아쉽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만족스럽게 해내기에 하루는 너무 짧은 걸?
안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야?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는 때에도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들진 않는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 때이니 바로 잠들어도 모자랄 판에 유튜브 몇 개라도 보고 자려고 애쓴다. 뭘 많이 하며 놀 에너지는 없으니 침대에 가만히 누워 눈만 뜬 채로 내 하루에 대한 보상을 준다. 어차피 피곤할 오전, 영상 몇 개 더 보고 잔다고 덜 피곤하지 않다는 완벽한 핑계를 가지고.
이럴 땐 출근 시간이 늦은 편인게 내 직업의 최고 장점이 된다. 회계법인에서는 출장을 가거나 고객사에서 원하는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10 to 7이다. 회계사라는 직업과 적성도 성격도 안 맞았는데 출근 시간만큼은 이렇게 잘 맞다니 정말 다행이다.
출근 시간이 늦은 대신 퇴근 시간이 7시로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니다. 7시에 퇴근하더라도 저녁 이후 개인 시간은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기에 모자라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바로 잠들고 싶진 않다. 미처 쓰지 못 한 브런치 글과 집 청소가 아른거린다. 그러니까 피곤해도 자기 싫은 마음은 여전하다는 거.
빨리 자고 싶을 때도 있어
자기 싫어병이 잠시 완쾌했던 적이 있다. 2개월 간 (너무 짧았던) 휴직을 하고 하와이에서 지내던 때다. 빡센 관광보다는 하와이에서 요양한다는 생각으로 2주 조금 넘게 머물렀었다. 이때는 오늘도 내일도 바다 앞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게 일정이었기 때문에 잠드는 게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자고 일어나야 내일 또 바다에 가서 누워 있을 수 있으니 제시간에 자려고 노력했다.
서울에서도 제시간에 자기 위해 내일이 오는 걸 억지로 기대해보려 한 적이 있다. '할 일 목록'에서 아무것도 못 지운 날에는 오늘 못 지운 아이들을 마저 지우기 위해 내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더 놀고 싶은 날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오전부터 뭘 하며 놀 수 있을까 상상하며 들떠 보려고 했다. 잘 안 됐다. 이런 방법이 통했다면 나는 자기 관리의 신이 되어 있었겠지.
나만 자기 싫어요?
가끔 내일 기대되는 일이 실제로 있을 때엔 (예를 들면 브런치에 발행할 글이 있을 때) 어서 잠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현실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이 내일을 기대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오늘은 명절 마지막 날이고 내일은 한파를 뚫고 출근해야 하는 날인데 기대가 될 리가.
게다가 연휴 내내 미뤄둔 일들은 이제 '내일의 나'에게 코앞에 닥친 일이 됐다. 쌓인 일을 보면 기대는커녕 한숨만 나온다. 오늘 밤에는 연휴에 펑펑 논 대가로, '내일의 나'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할 일 목록 중 하나라도 지우고 자야겠다. 몇 시에 자게 되려나.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