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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률 Feb 07. 2024

2년 간 PT를 받으면 근육이 생긴다?

내가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던 사람인지 간단히 말하고 싶으면 "PT 2년 넘게 했어요."라고 하면 된다. 놀라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지만 들으면 안 놀라는 사람이 없다. 일단 운동에 그렇게 돈을 많이 쓰냐며 놀라고, 돈을 들였는데도 이 몸이냐고 놀란다.


그런 반응이 이해된다. 26개월 동안 약 150회, 얼추 850만 원이 들었고 나는 여전히 팔다리 가늘고 배는 나온 마른 비만이다. 좋게 말하면 가녀린 아가씨, 다르게 말하면 흐물흐물한 종이 인형이다. 가격 개업 할인 덕에 부담을 좀 덜었지 니었다이 등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원했던 건 11자 복근에 탄탄한 팔다리였으니 결과물만 놓고 보면 돈값을 못 했다. 하지만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2년 동안 헬스장을 다니면서 내면만큼은 헬짱이 됐다.




부모가 아이를 학원에 보낼 때 큰 건 안 바라라니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 앉아서 귀동냥이라도 하길 바랄 때가 있다. '우리 애가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아요.'와 비슷한 마음으로 나도 스스로를 헬스장에 등록시켰다.


2년 내내 열심히 한 건 아니었 종종 작심을 하고 열심히 할 때가 있었다. 팔을 바들거리면서도 목표한 개수를 꾸역꾸역 채웠고, 싫어하는 유산소도 막상 할 때는 선생님이 시킨 숙제보다 더 했다. 야식으로 라면을 먹을 때는 꼭 닭가슴살을 넣어 먹었고 운동을 안 나가면 괜히 몸이 찌뿌둥한 것 같았다. 근육이 있지도 않은데 근손실을 걱정하며 여행지에서도 헬스장을 갔다.


그렇게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주일에 시간씩 심박수를 올리마음만이라도 헬짱으로 살다 보니 눈으로는 티가 안 나도 힘이 세지긴 했나 보다. 운동을 다닐 때는 몰랐는데, 그만두고 한 달이 지나니 평소에 매던 노트북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고 매일 오르던 지하철 계단도 숨이 찼다.




사실 이건 PT 선생님 헌정 글이다. 내가 좋은 경험을 한 건 다 선생님 덕분이다. 친해져서 계속 PT를 한 건지 PT를 계속해서 친해진 건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2년 동안 재등록을 했다. 지난여름에 선생님은 퇴사, 나는 이사하면서 지금은 밥도 먹고 술도 먹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회사 사람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2년 동안 꽤 설렜다. 항상 밝게 인사하고 운동 틈틈이 근황 업데이트를 했다. 주말에 뭐 했는지, 설레는 일은 없는지, 진상은 없었는지, 퇴사는 언제 하면 될지. 2년 동안 친구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회사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몸 건강이 아니라 마음 건강을 위해서 PT를 다닌 셈이었다. 하루 종일 좋은 소리 못 듣고 인간미 없는 대화만 하다가 선생님이 "안녕하세요. 회원님!!" 하며 밝게 인사해 주고 1kg 아령만 겨우 들어도 "잘했다!!"며 칭찬해 주면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주말에 선생님이 새로 취직한 헬스장에 다녀왔다. 반년 만에 가는 헬스장이었다. 혹시 운동할 시간이 될까 싶어서 오랜만에 운동복을 챙겨 입었는데, 괜히 배에 힘을 주고 등을 펴게 되는 게 조금 설렜다. 아 물론 선생님을 봐서 들뜬 것도 있고.


선생님이 수업을 하러 간 동안 나는 집에서 잘 안 하게 되는 등과 가슴 운동을 혼자 몇 개 해봤다. 6개월 만에 기구를 쓰는 거라 자세가 기억날까 싶었는데, 몸이 아직 기억하나 보다. 자세를 정말 잘 잡고 운동을 한 건지, 근육통이 제대로 왔다.


등이나 가슴 근육은 일상에 잘 쓸 일이 없다. 등은 항상 굽어 있고 가슴은 말려있다. 그랬는데 오랜만에 자극을 줬더니 상체 앞뒤로 난리다. 근데 이게 또 아픈데, 싫진 않다. 근육이 힘쓰는 법을 기억한다는 증거니까.


선생님이 이 맛을 다시 느끼게 하려고 오라고 한 거였나? 집에서라도 PT 2년 경력을 발휘해야 하나. 내가 말이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잘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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