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을 취미로 삼고 나니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친구가 크리스마스트리 뜨개질 세트를 선물해 주었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활동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베이킹 덕분에 열린 마음으로 뜨개질을 기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나에게 뜨개질은 단골손님들이 뜨개방에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활동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처음 크리스마스트리를 뜰 때 유튜브를 검색할 생각도 못 하고, 설명서만 읽으며 겨우 완성했다. 나중에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취미를 즐기고 있었고, 뜨개질 영상도 다양했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크리스마스트리는 비록 제대로 서 있진 못했지만, 내 손으로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그 뒤로는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어 져서 가장 쉬워 보이는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질려 모자와 가방도 함께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문어발’이라고 부르더라. 모자나 가방은 목도리보다 빨리 완성돼서 금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 머리에 딱 맞는 모자를 완성하고 나니, 베이킹과는 또 다른 성취감이 있었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내 맞춤형으로 직접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회사에서 나는 주주와 이사회를 위한 보고서를 분기마다 작업했지만,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 보고서가 정말 유용한지, 누가 읽기나 하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뜨개질은 달랐다. 손을 움직이면 바로 결과물이 나왔고, 그 결과물을 내가 직접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쏟아부은 노력에 비례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점도 마음이 들었다. 일상에서는 이런 간단한 공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공부를 매일 밤새 한다고 해서 시험 점수가 그만큼 오르는 게 아니고, 기획서를 정성을 다해 준비한다고 해서 꼭 채택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뜨개질은 내가 손목이 아플 정도로 시간을 들이면, 그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나왔다.
그래서 그 겨울, 일이 힘들 때마다 나는 뜨개질을 찾았다. 야근을 하다가 업무에 치여 불안할 때도, 부드러운 실을 만지며 겉뜨기와 안뜨기를 반복하면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음이 차분해졌다. 실제로 반복적인 손가락 운동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우울감에 좋다고 한다. 동기들과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 때는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이, 뜨개질을 하면서 조금은 채워진 듯했다.
뜨개질을 유튜브로 배우니 내 속도에 맞출 수 있어서 마음도 편했다. 빵을 태우면 버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뜨개질은 잘못 떠도 다시 풀고 뜨면 되니 마음이 더 편했다. 그리고 작품이 삐뚤빼뚤하거나 구멍이 몇 개 나더라도 기능에 문제만 없다면 굳이 다시 풀지 않았다. 실수를 해도 상관없고, 무한정으로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크리스마스트리 뜨개질 세트를 선물해 준 친구는 트리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몇 번이나 풀고 다시 뜨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뜨개질에 학을 뗐다고 한다. 반면 나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더니, 베이킹에서 느꼈던 도전의 즐거움을 뜨개질에서도 이어갈 수 있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새로운 도전을 즐기게 되었다.
근황
나는 10만 원어치 대바늘을 사고, 사둔 실이 대형 수납상자 하나를 넘길 만큼 쌓인 뜨개인이 되었다. 아직까지 쉬운 작품만 골라 뜨며 힐링하고 있다. 요즘에는 일하는 중에 뜨개질을 하진 않고, 글이 잘 안 풀릴 때 생각을 정리하며 뜨개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