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차를 내서 내리 쉬었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어 치과와 피부과를 연달아 다녀와야 했다. 날씨도 서서히 쌀쌀해지고 환절기가 오는지 비염 증상이 약간 느껴지고 피부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틀 동안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에는 초가을 같이 몹시 추워서 최소한 외투를 걸쳐야 했다. 지금은 치과에 다녀오고 나서 치과 근처 스타벅스에서 콜드브루 한 잔 시켜 놓고 앉아 있다. 정오에는 적잖이 사람들이 있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카페 안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어우러지는 정오의 스타벅스가 좋다.
어제는 피부과에 갔었는데 병원은 작고 낡았으며 90년대 식 인테리어와 앉으면 푹 꺼지는 소파가 인상적이었다.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안경을 껴도 시력이 안 좋으신지 휴대폰으로 피부를 직접 사진을 찍어서 보기도 하고 처치실에 누워 양말까지 벗어 보면서 전체적으로 피부를 살펴보셨다. 시진 하실 때 그분의 손길은 터프했다. 얼굴과 목 그리고 뒤통수까지 번진 피부는 곰팡이성 피부염이라고 한다. 보통 연고를 많이 처방해주지 않는데 특별히 많이 처방해 준 거라며 2주가량 연고 치료를 해보고 다시 뵙자고 한다. 최근 이 피부염 때문에 가려움증이 너무 심해 고통스러웠다. 목까지 번져버린 피부염은 외관상으로도 신경이 많이 쓰여서 얼마 전부터 어느 피부과에 가야 할지 계속 고민했었다. 이날 갔던 피부과에서는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약국에서 처방받은 연고를 받고 건널목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평소 교보문고나 서점에 들러 책 구경하는 것이 취미다. 들어가자마자 고전문학 책들이 진열된 곳으로 갔다. 서머싯 몸의 <서머싯 몸 단편선>을 사려고 했는데 아직 재고가 없었다. 책을 더 훑어보다가 즉흥적으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든 책 두 권을 집어 들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과 장 폴 사트르트의 <말> 이 두 권이었다. 두 권을 구매하고 교보문고 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마침 자리가 비어 있어서 <반쪼가리 자작>을 꺼내 조금 읽었다. 생각한 것보다 몰입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옆자리가 비자마자 누군가 앉았는데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 한 분이 앉았다. 그분이 앉은 이후로 책에 집중이 안 되고 그 여자에 눈길이 자꾸만 가서 책을 읽는 척하다 덮고 산책 겸 걸어서 집으로 갔다.
이틀 동안은 가까운 지인이자 친한 형과 같이 보내기도 했다. 형은 나와 6살 차이가 나며 현재는 대학생이다. 2년 전 음악 전공으로의 마음이 강렬하게 들어 음악을 전혀 배운 경험이 없는데도 대학생의 길로 뛰어들었다. 나도 대학을 두 번이나 가보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다.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해서 그냥저냥 살 줄 알았다. 계약직으로 1년 간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진로와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강렬하게 들었었다. 그 당시 함께 일한 동료들이 또래라서 함께 일하고 쉬는 날에 같이 보내기도 했던 시간과 추억은 좋았지만 어느 날에 들었던 생각은 내가 원하던 월급도 아니었으며 원하던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던 일을 발견했다거나 스스로 알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스스로 먹고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들었던 고민과 생각에 현실과 미래에 걸어볼 만한 길과 선택지가 간호사로의 길이었고 그 길을 위해 편입을 해서 다시 대학의 길로 뛰어든 것이었다. 인생사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시 20대 중반에도 늦은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30대 중후반에 공부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더욱이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형을 보며 절감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힘들어했는데 지난주에는 직접 전화까지 해서 고민과 심정을 토로할 정도로 시간이 갈수록 힘겨워했다.
돌아보면 여전히 모르는 것이 차고 넘치지만 삶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스스로 힘들다고 느낄 때면 지체 없이 가까운 동료나 지인들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토로할 때면 나는 상대방에게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나 반응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럴 때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돌아오지 않았고 상대방의 조언과 말에 오히려 반감을 가지거나 방어기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한 날에는 가까운 지인은 내가 인지하지 못해서 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해주거나 알려줘야 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런 시간을 통하여서 드는 생각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로 하지만 그보다 먼저 혼자가 되어 보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혼자 있기가 버겁고 지키기도 힘겨울 때면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자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낙망하고 넘어진 영혼의 누군가에게 어떤 말이나 조언보다는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틀 동안 같이 자고 먹고 마시며 지낸 형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힘겨워했다. 학업과 진로만이 아니라 놓인 상황과 현실적인 문제로 크게 힘들어했다. 이렇다 해줄 말이 없기도 했고 마음은 굉장히 애가 타서 그저 옆에서 같이 있어주고 식사라도 대접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를 정말 돕고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 기도를 해주고 있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정오의 스타벅스에서 이런 생각과 마음이 들었다. 지금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의 영혼과 마음에 어둠이 물러가고 햇빛이 비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