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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Sep 28. 2021

4. 30대에 필라테스는 처음이라서.

- 결코 살 빼려고 시작한 운동은 아닙니다만… -




 새벽 4시, 넘겨야 할 원고가 산더미였다. 며칠 전부터 이래저래 스케줄을 정리해가며 일을 하고 있는데도, 내 체력은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머리도 감지 못하고 기름이 번들번들한 얼굴,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하고는 카드뉴스 원고를 쓴지 세 시간째. 한 구다리만 쓰고 자야지, 딱 한 구다리만 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커피를 흡입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순간, 어깨부터 뒷목이 뻐근해진 게 느껴졌다. 며칠 째 새벽작업을 해서 그런가, 하고 목을 풀려고 했는데 고개가 0.1cm도 움직이질 않는다. 아, 정말 큰일났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택시를 불러 근처의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스마트폰 하는 시간이랑 횟수를 줄이셔야해요. 컴퓨터도요.”

 - 라는 말도 안되는 소릴 하셨다.

 내가 그 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저 방송작가라서 그게 안되는데..”

 - 라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래도 일을 해야 먹고 살 거 아닙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잘 참았다. 일단 의사 선생님은 물리치료와 약을 처방해주시곤, 간단한 스트레칭 몇 개를 알려주셨다. 기왕이면 운동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은 담 걸린 것 같았던 목과 어깨가 좀 풀어지나 싶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나는 집에서 스트레칭도 해보고, 마사지 샵도 갔다가, 결국 마지막엔 필라테스 센터를 찾았다.




 타고난 천성이 집순이었던 내가 평생에 걸쳐 해본 운동은 딱 두 개 뿐이었다. 그것도 무려 수십년 전 초등학생 시절, 엄마의 성화로 다닌 것들이었다. 첫 번째 운동은 팔자걸음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발레, 두 번째 운동은 수영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썩 성공적이지 못 했다. 발레는 꽤 오래 다녔던 것 같은데 팔자걸음은 끝내 고치지 못했고(왜 그만두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수영은 주에 이틀을 갔는데 갔다오는 날마다 귀가 간지러워서 고생을 했다. 알고보니, 수영장에 들어가면 귀에 염증이 생겼던 탓이었다.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운동을 한 적이 없다. 함께 일하는 작가들도 날로 몸이 안 좋아졌는데, 그들은 비상대책으로 제작사 건물 내에 있는 헬스장엘 다녀오곤 했다. 나는 그들이 실로 존경스러웠다. 섭외며 편집 등으로 스트레스가 만빵인데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온 몸이 운동과 땀으로 노곤노곤해졌는데 일을 한다는 것도 대단했다.

 나는 ‘잠을 못 자고 일을 했으니 = 잠을 자면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그 공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 수록 일을 할 수록 몸 상태는 꾸준하게 나빠졌다. 찬 바람을 조금만 맞아도 감기에 걸렸고, 주사를 맞아도 감기가 낫질 않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결국 나 또한 운동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운동은 해본 거 있으세요?”

 필라테스 상담을 하러 간 첫째 날. 그간 했던 운동이 있냐는 말에,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발레랑 수영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언제 했냐는 질문이 따라붙을 거였다. 그러면 나는 얼굴을 붉힌 채로 “24년 전이요..” 라고 답해야 한다. 뒷일을 생각해서 나는 운동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살 뺄 생각보다는 건강해지고 싶다고도 했다. 지금 어깨랑 목 상태가 최악이며, 몇 년 전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도 갔던 적이 있다고 했다. 상담 내용을 꼼꼼하게 적은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호흡법부터 배우고 들어가자고 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음, 조금 어색하신데 계속 하다보면 나아질 거에요. 무슨 동작이던 이 호흡법을 꼭 기억하세요!

 나는 후후하하를 기억하면서 본격적인 운동엘 들어갔다. 커다란 반원 상태의 보수 위를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기도 하고, 다리를 애매한 높이의 공중에 띄운 다음 10초를 기다리라고도 했다. 선생님이 “자, 들이마시고 내쉬고”라며 구령을 붙여주셨는데, 나는 숨쉬기도 힘들어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옆에 있는 수강생들도 호흡법을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확인할 순 없었다. 또 골반을 닫으라고 하거나, 갈비뼈를 활짝  열라고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주문들이 이어졌다. 몸 속에 고정되어있는 걸 어떻게 열고 닫으라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나는 느낌대로 골반을 닫고 갈비뼈를 열었다.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리고 그날 운동이 끝나고, 나는 몸살 기운처럼 욱신거리는 감각 때문에 앓아누웠다.


 한 이틀을 쉬고나서 두 번 정도 추가로 운동을 나가보니, 나는 주3일 정도를 운동하는 게 알맞았다. 내 스케줄에 운동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게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랜 친구들에게 드디어 운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네가 단톡방에 몇 시간 연락 없으면, 우리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까지 이야기한다니까. 제발 운동해서 기초체력 좀 쌓자.”

 친구들은 내가 몇 시간, 혹은 며칠 연락이 없으면 혹시 쓰러져 있거나 죽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들 했다. 생각해보면, 매일같이 버겁게 일하고 그 주제에 술까지 좋아하는데 원룸에서 혼자 사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내 연애 소식보다 운동 소식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운동은 때때로 핑곗거리로도 딱이었다. 엄마가 “요즘 왜 이렇게 살이 쪘냐”라고 하면 주3일은 필라테스를 나간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또 하등 쓰잘데기 없는 일로 나를 잡아두는 유튜브 제작팀에게 7시에 운동 예약해놔서 가야한다고 이야기하기에도 좋았다. 너희들이 무지막지하게 시키는 일 때문에 목이며 허리며 성한 곳이 없다고 덧붙이려다가 나는 한 번 더 꾹 참았다.

 여전히 호흡법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골반을 닫는 법이 의문스럽긴 하지만, 이번 생에야말로 지금보다는 좀 더 건강하게 늙어죽어야지 라고 나는 생각한다. 후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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